“사무실에 있다가 누군가를 만나러 나설 때는 핸드백에서 평소 쓰는 화장품을 빼고 서랍 속의 명품 화장품을 넣어요.”(30대 여성 직장인)
이처럼 명품은 한국사회에서 ‘과시욕’과 같은 말이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들은 스스로를 ‘장인정신의 총체’ 혹은 ‘가치’라고 규정한다.
과시를 팔든, 장인정신을 팔든 최근 명품산업의 성장세는 놀랍다. 세계 명품산업의 전체 매출규모는 1570억 달러(약 163조2800억 원, 2005년 기준)다. 그 중심에는 프랑스 명품회사가 있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카르티에, 샤넬 등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는 대형 브랜드들은 일부 이탈리아 브랜드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프랑스 브랜드다.
주한프랑스대사관에 따르면 프랑스 명품산업은 매년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명품브랜드들은 프랑스 전체 수출실적의 15%를 차지한다. 패션 액세서리, 가방, 보석회사들의 2007년 수출은 2005년보다 25%, 가죽신발 회사들은 10%, 의류회사들은 8%가량 늘었다.
왜 프랑스 명품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것일까.
○ 프랑스 명품의 역사
명품 브랜드들은 역사가 적어도 100년이 넘은 회사들이 많다.
백금, 금, 핑크골드가 서로 얽힌 ‘트리니티 링’으로 대표되는 카르티에는 파리의 한 보석상 숙련공이었던 루이 프랑수아 카르티에가 1847년 파리 몽토르고이 가(街) 29에 보석상점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스카프로 유명한 에르메스는 1837년 파리 시내에서 마구용품을 만드는 업체로 출발했다.
루이비통은 1854년, 샤넬은 1909년 각각 가방과 모자 상점을 열면서 시작했다.
이탈리아에도 구치, 프라다, 아르마니 같은 대형 명품 브랜드가 있지만 이들은 주로 1970∼1980년대에 출발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디자이너 브랜드들이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역사가 이처럼 긴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최초의 메트로섹슈얼(외모를 가꾸는 남성)’로 불리는 루이 14세는 유럽 전역의 장인을 불러 모아 귀족들의 수요에 맞는 사치품을 공급하도록 했다. 이처럼 근대 군주제는 프랑스 명품산업의 출발점이었다.
최근 출간된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에 따르면 왕조의 절대 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18∼19세기에 나온 프랑스 명품 브랜드들은 19세기 말 군주제가 몰락하고 산업자본이 대두하면서 유럽 귀족과 미국 등지의 신흥갑부로 소비층이 확산됐다. 이후 1980년대 들어 경제력을 갖춘 ‘골드 미스’들이 서구사회에 등장하면서 명품은 대중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기업이나 브랜드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탄생, 성장, 성년기를 거쳐 죽음에 이른다. 그렇다면 현재 명품 브랜드들은 성장기를 거쳐 전성기를 맞은 청년과 같다. 40대 이상이 주요 고객인 서구 사회와 달리 20대 중반부터 소비하는 아시아시장을 끌어들임으로써 ‘늙지 않는 샘물’을 마신 듯하다.
○ 명품회사가 말하는 명품이란
고아에서 프랑스의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 샤넬 여사는 “명품은 필수품이 끝나는 데서 시작하는 필수품”이라고 말했다.
샤넬 여사는 우아하고 단순한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 유행시킴으로써 여성들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 혁명가이기도 했다.
모던 패션의 시조라 불리는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1957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전통과 획일성을 중시하는 기계문명 시대에 패션은 인간의 궁극적인 위안물이 됐다”라고 말했다. 명품은 남과 다른 무언가를 소유하는 존재감을 준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에르메스의 명예회장인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는 고객이 있어야 명품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파는 것은 품질의 단순미, 우아함, 조화다. 제품을 소유한 고객의 특성이 배어들어 평생 소장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작품을 창
조하는 것은 브랜드의 장인들이지만 그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고객이라는 뜻이다.
이런 명품회사들은 단순히 제품만 파는 것으
로 끝나려 하지 않는다. 보석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카르티에는 현대미
술재단을 통해 전시회 및 컬렉션 등을 열어 세계
의 작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한다.
○ 마케팅 전략은 제각각 달라요
명품 브랜드들은 기본적으로 꿈을 판다. 하지만 너무 고가(高價)라 접근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명품업체들이 매장 진열장에는 그나마 싼 지갑, 반지갑, 명함집을 주로 전시한다. 향수도 그런 의미에서 명품브랜드로 가는 진입로다.
또 많은 회사들이 한 브랜드 안에 많게는 수백 개의 브랜드를 갖고 있는 것도 소비자 접근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그렇다고 모든 명품회사가 동일한 마케팅 전략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화장품시장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로레알그룹의 명품 브랜드 랑콤에서는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제품을 개발하기로 유명하다. 프랑스, 미국, 일본, 한국 등 세계 각지에 연구개발(R&D) 테스트센터를 두고 소비자를 불러 직접 화장을 하게 한 뒤 화장 습관을 조사해 각종 신제품을 개발한다.
반면 샤넬은 1983년 카를 라거펠트가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된 뒤 디자인을 워낙 중시해 가격 인상 이외에는 마케팅을 거의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내부에서도 이런 점을 비판하고 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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