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일용직들이 내몰리고 있다

  • 입력 2008년 7월 15일 02시 51분


경기 악화로 서민 일자리부터 감소

건설 - 숙박- 음식업 등 경기민감 업종 큰 타격

일용직 용접공 “지난달 수입 84만 원밖에 안돼”

감원 1순위… 해고뒤에도 사회보장 혜택 못받아

《#1. 노경천(53) 씨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건설일용직 용접공이다. 하루 일하고 받는 일당이 평균 12만 원. 경기가 좋을 때는 월 300만 원도 벌었지만 최근에는 일거리가 없다. 노 씨는 “군소 건설회사 사장들이 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곤 했는데 요즘은 한 달에 닷새도 채 일하기 어렵다”며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방세를 내고 나니 빈털터리가 됐다”고 말했다.

#2. 노 씨가 애타게 연락을 기다리는 건설사 사장 중에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부성건설 장용석(50) 사장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장 사장도 큰 건설사로부터 일감을 수주하지 못해 몹시 힘든 상황. 지난달 20일 공사대금으로 2300만 원을 받긴 했지만 자재비, 운임, 인건비를 빼고 나니 139만5000원만 남았다. 계약을 따내려 군소업체들끼리 ‘출혈 경쟁’을 하다 보니 빚만 늘었다.》

경기 불황으로 임시직과 일용직 일자리가 크게 줄면서 이들 직종에 종사하던 서민의 삶이 급격히 불안해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한 고물가 및 내수 위축→건설, 숙박, 음식점업 등 경기민감 업종의 침체→관련 일자리 감소→소비 여력 감소’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면서 사회적 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의 삶이 가장 먼저 고단해지고 있는 것이다.

14일 통계청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임시직 및 일용직 근로자 수는 지난해 5월에 비해 16만7000명 줄었다. 임시직은 8개월 연속 줄고 있고, 일용직은 4개월째 감소세다. 반면에 상용직 근로자 수는 비록 최근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2000년 1월 이후 8년 5개월째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 임시·일용직이 구조조정 1순위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원가 인상과 매출 침체 상황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해고가 쉬운 임시직과 일용직을 가장 먼저 줄인다.

전체 업종 가운에 건설, 숙박, 음식점업에 종사하는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비중이 가장 높다. 따라서 최근 이 3개 업종에서 임시·일용직 일자리의 퇴출 규모가 가장 크다.

일용직을 덜 고용해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은 부성건설 장 사장에게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 그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원자재 값이 폭등하는데 공사비는 오르지 않는 상황”이라며 “인건비라도 절약하지 않으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 음식업소 5월까지 2만3000개 폐업

임시직과 일용직이 줄면서 당장 끼니를 잇기 어려운 사람도 적지 않다.

노 씨도 그렇다. 그의 지난달 총수입은 84만 원. 교통비, 통신비, 월세 등을 내고 난 뒤 손에 쥔 돈은 19만4120원. 1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46만3000원)의 42% 수준밖에 안 된다. 저녁을 소주로 때울 때가 많다는 그는 “요즘 이 바닥에서 꼬박꼬박 밥 챙겨 먹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임시직과 일용직 감소세는 최근 건설업에서 숙박, 음식점업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S고깃집 주방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양선미(가명·48) 씨는 지난달 10일 1년 이상 일해 온 식당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음식점 매출이 줄어 기존의 직원 수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 양 씨는 그 뒤 매일 구인광고 전단지를 보고 있지만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한국음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올해 들어 5월까지 2만3000개 업소가 폐업신고를 했다”며 “문을 열고 있는 곳도 고용 여력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숙박업계 사정도 비슷하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에만 모텔 여관 등 숙박업소는 116개 줄었다. 숙박업중앙회 측은 “경기 침체와 유가 상승에다 투숙객마저 줄었다”며 “40% 이상 방을 채우는 곳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 “일용직도 사회안전망 포함을”

임시직 및 일용직 근로자는 서면 고용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자연히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도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한다.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주방 일을 하다가 해고된 한선희(가명·57) 씨는 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보험센터에 전화했지만 “고용보험에 가입이 안 돼 있어 도와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기하강 국면이 올 때 저소득 근로자들부터 노동시장에서 퇴출된다”며 “정부는 영세 사업장들도 사회보험에 가입하도록 인센티브를 주고, 고용보조금을 지급해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기선 기자 ksch@donga.com

현정택 KDI 원장 “올 취업자 20만 명 느는 데 그칠듯”

올해 하반기(7∼12월)에도 물가가 오르고 내수가 둔화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고용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현정택(사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1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2008년 하반기 경제전망과 대응과제’ 세미나에서 “우리 경제는 상대적으로 높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실질구매력 증가율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현 원장은 △제조업의 자동화 및 정보기술(IT)화 △유통서비스업의 대형화와 전문화 △도소매·음식·숙박업의 구조조정 등 구조적 요인에 경기적 요인까지 가세해 취업자 수 증가세가 지난해 28만 명에서 올해 20만 명 수준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채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하반기 국제유가에 대해 “3분기 배럴당 135달러(중동산 두바이유 기준)로 상승한 뒤 4분기에는 다소 하락해 130달러 내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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