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님들 “휴가라니요?”

  • 입력 2008년 7월 17일 02시 56분


올여름 한국 금융권의 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은 찜통더위 속에서도 제대로 휴가를 챙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발(發) 신용위기가 재연되면서 국내 금융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고, 급속히 하강하는 경기가 대출연체 등으로 이어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 들어 교체된 CEO가 많다는 점도 이들의 여름휴가 반납 원인 중 하나다.

17일 우리은행에 따르면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12일부터 2박 3일간 제주도에서 열린 하계 세미나에 참석했다. 6월 말 취임한 이 행장은 이번 행사로 휴가를 대신하기로 했다.

역시 6월 말 취임한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아직 휴가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이 회장이 15일부터 지점 방문을 시작하는 등 막 ‘현장 경영’에 나섰기 때문에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2005년에 외환은행장을 맡아 매년 여름휴가를 떠났던 리처드 웨커 행장도 올해에는 급박한 상황 때문에 휴가일정을 못 잡고 있다. 론스타와 HSBC가 체결한 외환은행 지분 인수계약의 만기가 이달 말로 다가와 있고, 금융당국의 승인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임직원들의 휴가 사용을 독려하기 위해 다음 달 초 사흘간 휴가계획을 잡아 놨다. 하지만 최근 주가 하락으로 지주회사 전환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휴가를 챙길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처럼 봉사활동으로 휴가를 대신하는 CEO도 있다. 14일부터 강원 춘천시에서 열린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2박 3일 참여했다. 하 행장은 10여 년째 여름휴가 때마다 이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몇몇 은행장은 짧은 휴가를 다녀올 계획이다. 민유성 산업은행장,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다음 달 초 3, 4일 정도 휴가를 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에서 곧바로 행장이 된 윤 행장이 그동안 거의 쉬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는 모처럼 짧은 휴가를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휴가에 대해 은행권보다 한결 분위기가 자유로운 증권업계의 CEO들도 증시 상황이 워낙 요동을 치다 보니 좀처럼 휴가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의 이동걸 사장은 8월 중순 이후 휴가를 고려하고 있지만 현재 시장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구체적인 일정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5월에 취임한 삼성증권의 박준현 사장도 휴가 일정을 잡지 못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휴가가 잡혀도 경영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국내에 머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하나대투증권의 김지완 사장은 휴가를 가는 대신 다음 달 1, 2일 임직원들과 함께 서울 북부의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무박 2일로 등정하는 ‘불수도북’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이 급변하다 보니 금융당국 수장들의 마음도 편할 리 없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다음 달 초 2∼3일 가량 휴가를 쓸 예정이지만 아직 날짜를 잡지 못했고,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아직 휴가 계획이 없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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