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교시절 수업 빼먹지도 못했죠
‘경축, 박인비(생활체육학과 08) 미국 LPGA US오픈 우승.’
서울 노원구 월계동 석계역에서 광운대로 가는 길에는 박인비(20·SK텔레콤)의 US여자오픈 골프대회 우승을 축하하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광운대 캠퍼스 곳곳에도 똑같은 축하 문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박인비는 3월 이 대학 생활체육학과에 입학한 새내기다.
인터뷰 요청에 박인비는 광운대를 장소로 정할 만큼 학교 사랑이 대단했다. 그는 11일 US여자오픈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해 광운대의 명예를 드높인 공을 인정받아 ‘자랑스러운 광운인상’을 받았다. 이 상은 주로 졸업생 가운데 성공한 최고경영자나 고위 공무원 등에게 주어지는데 박인비는 운동선수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축구스타 설기현에 이어 두 번째로 영광을 안았다.
박인비와의 인터뷰는 광운대 대학본부 2층에 있는 재단 이사장실에서 진행됐다. 광운대 이상철 총장이 이사장실을 이용하도록 배려했다.
“대회 때마다 비행기나 차로 이동을 하는데 잠을 못 자는 대신 그 시간에 책을 보고 틈틈이 리포트를 썼어요.”
그는 프로 골퍼로는 드물게 공부 욕심이 많다.
용인 죽전중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것도 골프와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때 우승을 많이 하긴 했지만 골프 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 공부도 같이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 수업은 하나도 안 빼먹고 연습은 학교 끝난 뒤 했어요.”
다섯 차례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대표 선수로 뽑혔고, 2002년에는 미국 주니어챔피언십에서 역대 두 번째 어린 나이(14세)로 우승하며 그해 AJG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적은 훈련 양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두자 골프인들 사이에서는 ‘훌륭한 골프 유전자(DNA)’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아버지 박건규 씨는 핸디캡 2의 아마추어 고수였고, 어머니 김성자 씨도 박인비를 임신했을 때 임신 8개월 때까지 라운드를 했을 정도로 골프를 좋아했다.
그는 골프 특기생이 아니라 학교 성적과 SAT 점수로 2006년 네바다라스베이거스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회에 참가하면서 학교 다니는 게 불가능해 한 달 만에 중퇴했다. 지난해 말 대학에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광운대로 진로를 정한 이유도 골프와 학업을 같이할 수 있도록 대학에서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메이저 챔피언에게 한 수 지도를 받고 싶은 마음에 특기인 퍼팅을 잘 하는 비결을 묻자 “그냥 감으로 친다”고 말했다.
좀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자 “보통은 퍼터를 시계추처럼 움직이는데 저는 낮게 뒤로 빼서 그대로 쭉 밀어줍니다. 가끔 ‘뒤땅’이 나기도 하지만 방향은 정확해요.”
그의 목표는 오래도록 선수로 필드를 지키며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골프 여왕’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이야기를 꺼냈다.
“오초아는 실력도 좋지만 선행을 많이 해요. 미국에 있는 멕시코인들은 골프장에서 풀을 뽑거나 청소를 하는 등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많아요. 오초아는 대회에 참가하면 골프장 주변의 멕시코인들을 초대해 식사를 함께 합니다. 그냥 골프만 잘 쳐서 국민 영웅 대접을 받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며칠 전 스무살 생일을 치른 박인비의 당찬 꿈이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