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물가잡기’냐, 재정부 ‘실물경제’냐

  • 입력 2008년 7월 19일 02시 59분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 금리 인상이 임박했다는 신호를 시장에 잇달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경기 경착륙(hard-landing) 우려를 들어 금리 인상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고유가로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서는 고금리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떨어지는 자산 디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어 금리 인상의 발목을 잡고 있다. 》

금리를 올리면 가계 및 기업의 부채 부담이 커져 가뜩이나 체력이 떨어진 경제에 치명타를 가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산 가격을 추가 하락시켜 자칫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은행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재정부의 우려다.

이런 견해차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중앙은행과 성장을 당면과제로 삼는 정책부서 간의 오랜 논쟁점이지만 ‘경기 하강 속 물가 상승’이라는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정책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8일 한국은행 회의실에서 열린 확대연석회의에서 “유가 급등으로 물가가 크게 오르고 경기가 둔화되면서 서민생활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민 생활의 안정을 지켜야 할 한은의 책무가 더욱 막중해진다”면서 “앞으로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 이어 물가 안정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이 총재의 이날 발언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등의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리먼브러더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8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본 것을 비롯해 씨티그룹(3분기 두 차례) 크레디트스위스(하반기 두 차례)도 금리 인상을 점치고 있다.

채권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기대에 따라 금리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18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1일보다 0.20%포인트 오른 연 5.57%이고 국고채(3년물) 금리는 연 5.87%에서 17일 연 5.97%로 0.10%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정부는 금리 인상은 ‘마지막 카드’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자산 디플레이션이 시작된 가운데 금리를 올릴 경우 가계와 중소기업에 주는 충격파가 상당할 것”이라면서 “대출을 제한해 과잉 유동성은 잡을 수 있겠지만 실물경제에는 큰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김동수 차관도 최근 “물가관리를 위해서는 (원가 요인을) 직접 관리하는 미시적 접근도 중요하다”고 말해 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근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도 환율을 끌어내려 수입 물가를 낮추고 달러를 푸는 대신 원화를 흡수해 유동성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금리 인상의 대안이라는 것이 재정부의 설명이다.

특히 재정부는 최근 며칠간 유가가 내려가면서 정책 운용에 여유가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물가가 지난해 10월부터 급등했기 때문에 4분기에는 기저효과로 물가상승률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신용상 거시경제실장은 “과잉 유동성을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금리를 올려 물가는 잡지 못하고 서민과 중소기업의 고통만 커지지 않을지 손익을 면밀히 평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