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대장.’
요즘 김기홍 하나금융그룹 커뮤니케이션팀 차장을 사무실에서 부르는 별명이다. 하지만 동료들은 아무도 김 차장을 나무라지 않는다. 매일 아침 그는 ‘카풀’(자동차 함께 타기)로 회사 동료들의 운전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서울 성동구 옥수동 집에서 출발할 때 주변에 사는 동료 직원 2, 3명을 자기 차에 태워 출근한다. 그런데 여럿을 태우다 보니 중간에 5분, 10분씩 시간이 늦어질 때가 적지 않아 영등포구 여의도동 하나금융그룹 본사 사옥에 도착할 때 아슬아슬하게 지각하는 일이 늘어난 것이다.
그는 “카풀로 동료들의 교통비용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친해져 팀워크도 좋아졌기 때문에 지각 대장이라는 말을 들어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휘발유 값이 L당 2000원 안팎으로 치솟자 직장인들의 출퇴근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동료들과 차량을 함께 이용하는 ‘카풀’은 기본이고, 업무용 차량을 연료소비효율이 높은 차로 바꾸는 등 이동 비용을 낮추기 위한 갖가지 노력들이 ‘직장인 생활백서’로 자리 잡았다.
○ 출근은 통근버스로
LG그룹은 여의도 사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이용하는 통근버스를 최근 95대에서 102대로 늘렸다. 주로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했던 서울 강남권과 경기 수원시 거주 직원들이 대거 통근버스를 타면서 이 지역을 오가는 버스가 콩나물시루가 됐기 때문이다.
LG그룹 측은 “통근버스를 추가로 증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아복 제조기업인 아가방앤컴퍼니 직원 270여 명은 대부분 ‘뚜벅이’다. 회사 차원에서 ‘자가용 타지 않기 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8일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사옥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은 불과 10여 대에 그쳤다.
그나마 사옥에 세워진 차량은 대부분 영업 활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차량이었다. 이 차를 운행하는 직원들은 회사 총무 담당자에게서 ‘트렁크에 불필요한 짐을 싣지 마라’ ‘연료통에 연료는 절반만 채워라’ 등 연비 개선책을 ‘세뇌당할 정도’로 반복해서 듣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처음엔 임직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지만 에너지를 아끼고 후세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자는 취지에 공감해 자가용 타지 않기 운동이 정착됐다”고 전했다. 아가방앤컴퍼니는 유가가 더 오르면 방문 차량의 출입을 일부 통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차량 홀짝제’에 동참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포스코의 경북 포항제철소는 최근 ‘차량 3부제’를 ‘홀짝제’(2부제)로 강화했다. 다만 3명이 탄 카풀 차량은 2부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나금융그룹은 21일부터 ‘차량 5부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차량 끝번호가 1과 6이면 월요일에 회사에 자가용을 갖고 오지 못하는 방식이다.
업무시간에도 이동 비용을 아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 업무 출장도 카풀로 해결
김경택 쌍용건설 업무부 과장은 18일 오전 8시 출근하자마자 화이트보드에 ‘오후 2시 한국도로공사(성남)’라고 썼다. 오후 2시에 경기 성남시 한국도로공사에서 A공사를 같이 수주한 건설사 관계자들과 공동 미팅이 있는 날인데, 방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같은 자동차를 이용하자는 뜻이다.
30분 뒤 같은 부서원인 정모 과장과 박모 대리가 김 과장 자리로 왔다. 이들도 각각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를 가야 하니까 함께 가자고 얘기했다.
김 과장은 “운전대를 동료에게 맡기면 이동하면서 회의 관련 자료를 훑어 볼 여유가 생긴다”며 “임원도 아닌데 개인 운전사를 두는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웃었다.
롯데마트는 최근 전국 58개 지점 위생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하절기 식중독 위생 관리 교육’을 화상으로 실시했다.
평소 같으면 이들은 송파구 잠실동 롯데마트 본점에 모여 교육을 받았지만 최근 ‘본점과 지점 간 쌍방향 원격 회의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웬만한 교육이나 회의는 이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롯데마트 측은 “전국에 지점이 많은 업종의 특성상 출장 및 교육으로 이동하는 거리가 길어 길거리에 쏟아 붓는 연료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자는 뜻에서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이 시스템을 통해 연간 3억 원 이상의 연료비 등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상은 고유가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영업용 차량 400대를 경차로 바꿨다. 경차로 절감하는 유류비와 고속도로 통행료가 연간 4000만 원이 될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