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환차손 비상… 은행도 “앗, 뜨거”

  • 입력 2008년 7월 19일 02시 59분


옵션거래 결제 연체 급증… 은행들 대납-대출 전환

중소기업들이 통화옵션 상품인 ‘녹인 녹아웃(KIKO)’ 옵션거래에 나섰다가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가치는 하락)으로 생긴 환차손 결제대금을 내지 못해 경영 위기에 몰리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 옵션을 판 은행들이 대출을 일으켜 결제대금을 대신 내주는데 KIKO 연체가 늘어나면 은행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8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상품을 생산하는 한국의 유명 중소기업 A사가 국내 은행 3곳과 ‘KIKO’ 통화옵션 거래를 했다가 수백억 원의 환차손을 입고 환차손 결제대금을 납기일까지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A사는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환차손을 봤고, 자금 부족으로 제때 결제대금을 내지 못한 것으로 은행들은 보고 있다.

KIKO 옵션은 환율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미리 정한 환율에 달러를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 환율이 이 범위 안에 머물면 기업에 유리하지만 환율이 급등해 그 범위를 벗어나면 기업은 계약금액의 2, 3배에 해당하는 외화를 시장 환율보다 낮은 수준에서 팔아야 해 큰 손실을 보게 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환율이 한동안 하락세를 보이면서 KIKO 옵션 결제대금 연체율이 줄었다가 최근 다시 늘고 있다”며 “KIKO 옵션거래 손실로 기업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은행 건전성도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통화옵션 관련 기업의 환차손 규모는 3월 말 현재 2조5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이 1조9000억 원, 대기업이 6000억 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분석됐다. 일부 기업은 투기 목적으로 수출 대금을 훨씬 웃도는 과도한 금액을 여러 은행과 KIKO 통화옵션 거래를 하는 ‘오버 헤지’에 나서 손실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3월 말보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서 환차손 규모가 줄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해 11월 이후 중소기업의 KIKO 옵션거래가 많이 늘었기 때문에 환차손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의 수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17일 최근 중소무역업계의 KIKO 손실과 관련해 관련 상품의 계약 무효를 주장하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18일 KIKO 손실이 확대되자 상장사들이 통화관련 파생상품 계약을 할 때 세부 조건을 결산 보고서에 공개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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