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창호-외단열재로 열 제어 에너지 30% 줄여
지하수-햇빛-빗물도 활용… 건설 패러다임 바뀌어
18일 오후 2시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 안에 있는 대림산업의 건축환경연구센터.
건물 앞마당의 온도는 31.5도로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배어 나올 정도. 하지만 센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금세 선선한 기운이 밀려왔다. 실내 온도는 26도 정도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에어컨, 선풍기 같은 냉방시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밀은 벽과 창에 숨겨져 있었다. 기존 단열재보다 4배 정도 외부의 열을 잘 차단하는 ‘슈퍼 창호’와 건물 외벽을 둘러싼 ‘슈퍼 외단열재’가 바깥의 더운 공기를 꼭꼭 차단한 것.
이 센터의 관계자는 “겨울에 바깥 온도가 영하로 떨어질 때도 건물 내부는 20도로 유지되도록 설계했다”며 “이런 첨단 열환경 제어기술을 적용해 냉난방 에너지 소모를 30%가량 줄인 아파트가 2010년 3월 울산 중구 유곡동에서 처음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 건물은 에너지 ‘다이어트’ 중
고유가가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면서 건축에서 ‘착한 건물 짓기’가 새로운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얼마나 높고, 얼마나 디자인이 좋은가에서 얼마나 ‘친환경적인가’ 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
‘착한 건물’의 핵심은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는 데 있다.
건물의 외벽은 에너지를 잡아먹는 주범으로 꼽힌다. 열전도율이 높은 콘크리트 안에다 흰색 스티로폼을 넣어 열을 막는 기존 설계방식으론 에너지 손실을 막기 어렵다. 콘크리트 바깥쪽에 스티로폼의 일종인 ‘네오풀’을 30cm 두께로 설치하면 단열 효과는 7배로 커진다.
이런 시설들을 도입한 건축환경연구센터의 냉난방 에너지 소비는 20%로 급감했다. 한 가정이 1년 난방비로 150만 원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 120만 원을 줄일 수 있는 셈. 대림산업 기술연구소 원종서 연구원은 “최근의 에너지 절감형 건물은 저유가 시대에 단지 보기 좋다는 이유로 유리 건물을 선호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고효율 빌딩에 친환경 인센티브 줘야”
하나은행은 내년 1월 서울 을지로 본점 건물을 헐고 지하 7층, 지상 25층에 연면적 5만1000m²(약 1만5427평) 규모로 재건축하면서 ‘친환경 건물’로 지을 계획이다. 2011년 말 완공되는 이 건물 옥상에는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설치해 식당 조명과 외부 가로등에 소비되는 전기를 충당할 계획이다.
한국의 전체 에너지 소비 가운데 건물부문에서 소비되는 비중은 약 30%. 하지만 2002년 뒤늦게 친환경건축물인증제를 실시한 한국의 경우 2007년까지 친환경 인증을 받은 건축물은 300여 개에 불과한 상황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초에너지절약주택(패시브하우스) 시범보급 사업이 2001년 마무리돼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중심으로 1만여 채 이상의 에너지 절감형 주택이 보급됐다.
대림산업 원 연구원은 “현 제도로는 단열을 위해 벽 두께가 두꺼워지면 용적률 등에서 업체가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반대로 친환경 건물을 짓는 업체에 정부가 세제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 에너지 절감형 건설은 ‘선택’ 아닌 ‘필수’
롯데건설이 강원 원주시에 건설 중인 원주공공청사에는 땅속 지하수를 순환시켜 냉난방을 하는 지열 설비를 도입했다. 롯데건설은 이 설비로 연간 1억500만 원이던 냉난방비를 4500만 원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GS건설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분양하는 ‘서교 자이 웨스트밸리’ 주상복합 아파트에 열병합 발전기를 도입해 가구별 전기료를 20∼40% 줄이겠다고 밝혀 호응을 얻고 있다.
지상의 태양빛을 끌어와 지하주차장을 300∼1000럭스(lux)의 조도로 유지시키거나, 빗물을 모아두었다가 가구별 화장실 양변기나 단지 내 청소 용수 등으로 사용하고 태양열을 이용해 단지 내 가로등을 밝히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미국 그린빌딩위원회가 실시하는 친환경건축물인증제(LEED) 최고 등급 획득을 추진 중인 SK건설 관계자는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친환경 건축물 시공 능력을 공인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에너지 절감형 건설 공법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