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이전해야 민영화” 공공개혁 후퇴 우려

  • 입력 2008년 7월 22일 03시 04분


■ 공기업 민영화 방침 논란

비용부담 커 ‘특급 공기업’外인수자 나설지 의문

“매각 대금 깎아줄 수도…” 시장경제 원리 어긋나

수도권 대책은 빠져… 김문수지사 “ 망국적 정책”

21일 정부가 혁신도시로 이전이 결정된 공기업에 대해 지방 이전을 전제로 민영화를 추진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공기업 매각 협상에서 이 조건이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경제 개혁 정책인 공기업 민영화의 규모와 정도가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수도권 규제가 지나치게 완화될 것이라는 것은 기우(杞憂)”라고 밝히면서 ‘MB 노믹스’의 상징이었던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기업 지방 이전해야 민영화” 논란

최상철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지역발전정책 추진전략 보고회의 후 브리핑에서 “혁신도시의 경우 공기업의 선(先)지방 이전, 후(後)선진화(민영화)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지방 이전 대상 공기업의 지분 전체 또는 일부를 매각하면서 “사려면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조건을 수락하라”고 요구하겠다는 것. 매각 협상에서 이 조건이 걸림돌로 작용해 일부 공기업의 민영화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방 이전을 조건으로 내걸어도 경쟁력 있는 공기업은 얼마든지 새 주인을 찾을 수 있고 (새 주인이 지방 이전을 받아들이면) 매각 대금을 깎아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어떻게 이런 반(反)시장경제적 판단이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결국 민영화 대상 공기업 수를 크게 줄이자는 것이 정부의 속뜻 아니냐”고 비판했다. 재계의 한 임원도 “일부 특A급 공기업을 제외하고는 지방 이전에 따른 각종 비용을 감수하며 인수할 만큼 매력적인 공기업이 많을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이 같은 민영화 방식으로는 공기업 매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 뒤 중소기업 등 민생 관련 경제 정책에 사용한다는 ‘MB 노믹스’의 기축 논리 중 하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청와대가 국정 주도권을 회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한나라당과 관료 사회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에 이렇다 할 반론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

또 최근 촛불집회의 이슈에 공기업 민영화 반대 주장이 뒤섞인 것도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대상 축소’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발표를 하게 한 정치적 배경으로 꼽힌다.



○수도권 규제 완화 우선순위서 밀려 노무현 정부 시절 수도권 집중 규제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주요 정책수단 중 하나였다. 현 정부는 대선 공약에서부터 정책적 실효성이 결여된 수도권 규제를 재검토해 집적 효과를 살리겠다고 밝혀 왔다.

따라서 수도권 대책이 빠진 이날 발표 및 이 대통령의 언급은 수도권 규제 완화를 기업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 강화의 주요 현안으로 언급해온 이전 기조와는 방향이 달라진 것.

이 대통령은 “지방과 수도권이 상생하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설명도 붙였다. 최상철 국가균형발전위원장도 “지방의 의사에 반해 수도권 규제를 합리화하지는 않겠다”고 못박았다.

이 발언은 정치적 환경 변화를 감안해 수순(手順)을 조정하는 차원을 넘어서 1차적으로 지방의 발전을 우선시하는 쪽에 실려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불러일으켰다.

정부 안팎에서는 “대기업 위주의, 수도권 규제 완화 위주의 정책을 강조하는 것으로 비쳐온 정부가 광우병 파동과 경기침체 등을 겪으면서 서민과 지방의 경제적 소외의식을 다독이지 않고는 정책 드라이브를 걸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그동안 ‘과감한 수도권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기대해온 경제단체와 경기도, 수도권 지역의 기업인들은 정부의 이런 태도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이날 정부의 발표 내용을 전해 듣고 “지방과 수도권을 구분해 편싸움을 하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분열적이고 망국적 정책”이라면서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금승 전국경제인연합회 규제개혁팀장은 “이명박 정부가 지방 발전의 마스터플랜을 내놓았으니 이제는 수도권 규제 완화의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기업의 50%가 집중된 수도권이 어려워지고 그러면 경제 전반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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