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협력이 경쟁력이다]<상>4년 성과와 과제

  • 입력 2008년 7월 23일 02시 57분


대학은 기술이전, 기업은 취업보답

《선진국에서는 대학이 산업체에 기술을 이전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학이 산업체와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4년부터 5년 계획으로 산학협력중심대학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대학과 산업체가 공동 기술개발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산학(産學)협력 사업의 성과를 평가하고 발전방안을 알아본다.》

전국 8개권역 12개 대학-기업체 유기적 연결

세계적 기술 상용화-대졸자 현장 투입 ‘상생’

“실습 학생 일 잘한다” 입소문… 취업률 높아져

액정표시장치(LCD)의 핵심 부품인 백라이트유닛(BLU) 양산 기술을 보유한 ㈜우영은 각고의 노력 끝에 2년 전 대만 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입업체로부터 “온도 변화에 오작동이 생기니 5억 원을 물어내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돈도 문제였지만 앞으로 수출 길이 막힐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위기였다.

이 회사는 수소문 끝에 한양대 안산캠퍼스에서 ‘살길’을 찾았다. 우영의 어려운 사정을 들은 한양대 측은 공용장비센터의 값비싼 품질평가기기로 수차례 열충격시험을 실시한 뒤 제품에 문제가 없다는 공인 증서를 내주었다.

우영이 이를 대만 업체에 제시하자 그제야 배상 요구를 거둬들였고 수출도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우수한 기술을 갖고도 자본이나 전문성의 한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에 대학의 연구력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런 협조가 가능하게 된 것은 교과부의 산학협력중심대학 사업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5년간 참여 대학에 440억 투자=대학의 교육과정이 산업 현장과 동떨어져 대학 졸업자를 채용해도 바로 활용할 수 없고 재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 산업계의 해묵은 불만이었다. 대학은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상용화할 길이 없어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과 인근 지역의 산업체를 유기적으로 묶어내는 사업을 만들었다. 전국을 8개 광역권으로 나누어 거점 대학을 선정하고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참여 대학에 매년 440억 원을 투자해 산학협력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산학협력 중심대학으로 활동하는 대학은 한양대(안산) 강원대 호서대 경북대 부산대 전주대 순천대 서울산업대 한국산업기술대 한밭대 상주대 동명대 등 12개 대학이 있다.

이들 대학은 산학협력을 전담하는 우수 교수들이 업종에 따라 협력단을 만들어 평균 500여 개의 인근 기업과 가족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대학은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특허출원 등을 돕고 기업은 해당 대학의 학생들을 인턴으로 고용하거나 현장 실습을 지원해 실전 감각을 길러주고 있다.

▽교육과정-기술력 크게 향상=지난해까지 산학협력을 통해 이룬 실적을 살펴보면 대학의 교육과정이 현장 친화적으로 바뀌고 기업체의 기술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업 첫해인 2004년에 참여 대학들은 산업계 출신 교수 102명을 임용해 교육과정을 뜯어고쳤다. 2005년에도 102명, 2006년에는 149명의 산업계 출신 교수를 임용했다.

대학과 산업체가 협정을 맺는 이른바 ‘가족회사’도 급증했다. 2004년 4745개로 출발한 가족회사는 2005년에 6420개, 2006년에 7994개로 늘어났다. 산학협력을 통해 3만3279명의 산업인력을 재교육했고 특허출원 성과도 649건이나 올렸다.

충남 천안시의 반도체회사들과 가족회사 관계를 맺고 있는 호서대의 정차근 사업단장은 “중소기업은 최신 기술을 개발할 때 해외 연구 결과나 최신 산업계 동향 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대학이 기업에 제공한 기술 중 일부는 현장성이 뛰어난 제품으로 탄생한다”고 말했다.

대학이 산업체에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연간 100건 미만으로 아직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미미하다. 하지만 기술지도는 매년 4000건에 육박해 산업체의 신제품 개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대학이 받는 도움도 크다. 이 사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현장에 강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참여 학과의 지난해 취업률은 77.2%로 높은 편이다. 업체가 주는 장학금을 받는 학생도 매년 1500명 정도 된다.

임창빈 교과부 산업인력양성 과장은 “산학협력에 참여한 대학과 교수, 기업 모두 매년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모든 대학이 산학협력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 대상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김우승 산학협력대학협의회장

“협력, 이제 걸음마 단계

첨단 기술 부족한 中企

경쟁력 키워낼 지름길”

“지난 4년 동안 산학협력중심 대학사업을 통해 대학과 산업계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기초적인 시스템은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이를 뒷받침할 후속 사업을 준비해 지금까지 키워 놓은 기술개발이 결실을 보게 해야 합니다.”

산학협력중심대학협의회 김우승(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사진) 회장은 내년 9월 만료되는 산학협력중심 대학사업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업에 참여한 대학과 산업체들의 노력으로 다양한 산학협력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의 산학협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따라서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모든 대학과 산업계에 정착시키기 위해 반드시 2단계 사업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김 회장의 지적이다.

“내년에 사업이 끝나면 각 대학에 지원되던 사업비가 끊깁니다. 산학협력에 드는 예산이 연간 수십억 원인데 재정이 취약한 우리 대학들이 이를 자체 조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산학협력 시스템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되면 협력 대학을 통해 각종 기술을 지원받고 장비를 빌려 썼던 중소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김 회장은 교육 경제 관련 유관 부처가 협의해 2단계 산학협력중심 대학사업을 추진해줄 것을 촉구했다.

김 회장이 제안한 2단계 사업은 1단계 사업 참여 대학에는 시스템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만 지원하는 대신 다른 대학에 지원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대학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어렵게 개발한 시스템 중 성공 사례를 다른 대학에 보급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2단계 사업에 참여하는 대학은 기존 대학의 노하우를 활용하면 단기간에 산학협력을 체질화해 더욱 많은 기업체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김 회장은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산업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최신 기술이나 고가의 장비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며 “이런 현상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이 대학과 기업이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냄으로써 국가경제를 키워 가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정부와 대학, 기업이 산학협력 정착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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