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도국’ 인정땐 농산물 174개 품목 관세 덜 내려도 돼

  • 입력 2008년 7월 28일 02시 58분


WTO사무국 들어서는 김종훈 본부장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한국 등 일부 국가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농산품에 대한 예외 조항을 대거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정부 수석대표인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주요국 통상각료들이 참석하는 그린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5일(현지 시간) 차에서 내려 WTO 사무국에 들어서고 있다. 제네바=연합뉴스
WTO사무국 들어서는 김종훈 본부장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한국 등 일부 국가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농산품에 대한 예외 조항을 대거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정부 수석대표인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주요국 통상각료들이 참석하는 그린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5일(현지 시간) 차에서 내려 WTO 사무국에 들어서고 있다. 제네바=연합뉴스
■ 잠정안으로 본 ‘한국에 미칠 영향-대책’

수입농산물 중 특별품목 12% 지정 가능… 일단 ‘선방’

최종단계서 ‘농업 개도국 지위’ 관철이 최대 관건으로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무역협상에서 농산물 분야는 개도국 입장에서, 공산품 분야는 선진국 입장에서 참여해 왔다. 이 같은 시각에서 볼 때 DDA가 26일(현지 시간) 내놓은 잠정 합의안에 대해 한국은 대체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특히 한국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농산품에서 관세를 덜 낮추거나 아예 낮추지 않아도 되는 품목이 상당 수준으로 허용돼 국내 농업에 대한 타격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잠정 합의안에 대해 인도 등 주요국이 일부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어 최종 타결 가능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또 최종 합의안이 확정된 후 각국이 이행계획서를 제출하는 단계에서 한국이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느냐 여부도 핵심 관건으로 남아 있다.》

○ 마늘 관세율 360%에서 191.9%로 낮춰야

가장 첨예하게 맞섰던 농업분야 관세 감축률은 기존 관세가 높을수록 더 많이 깎는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4개 구간으로 나눠 합의했다.

개발도상국을 기준으로 △현행관세율 30% 이하 품목은 관세의 33.3%를 감축하고 △30% 초과∼80% 이하는 38.0% △80% 초과∼130% 이하는 42.7% △130% 초과는 46.7%를 감축하기로 결정됐다. 선진국은 더 많이 감축해야 한다. 관세 감축 이행 기간은 개도국은 8년, 선진국은 5년이다.

이럴 경우 한국은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도 농산물 관세를 전체적으로 현재보다 3분의 1 정도 낮춰야 한다.

예컨대 마늘은 현행 관세율이 360%인데 민감품목 등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이보다 46.7%를 줄인 191.9%까지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수입농산물 품목은 세번(관세율표에 표기된 세부품목 표기번호) 기준으로 1452개이며, 관세율이 100%를 넘는 고(高)관세 품목은 인삼 참깨 등 126개(8.7%)에 이른다.

○ 한국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하지만 관세율 인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큰 품목은 민감품목이나 특별품목으로 지정할 수 있어 ‘DDA가 국내 농업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한국이 주장할 수 있는 민감품목 수는 전체 수입 농산물 1452개 가운데 선진국 기준(4%)으로는 약 58개, 개도국 기준(5.3%)으로는 약 77개다.

한국은 또 개도국 대우를 받으면 약 174개(12%)를 특별품목으로 정해 낮은 감축률을 적용받고 이 가운데 73개(5%)는 현행 관세율을 유지할 수 있다.

인삼 참깨 옥수수 대추 녹두 잣 등 한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품목은 대부분 예외조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들 상품은 개방 충격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현재도 500% 이상의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만큼 향후 특별품목이나 민감품목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DDA는 각종 농업보조금도 대폭 줄이기로 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유럽연합(EU)은 한도액이 80%나 깎인다. 미국도 70% 삭감된다. 한국처럼 보조금 규모가 ‘100억 달러 미만’인 국가의 한도액 감축률은 55%로 결정돼 현재 60억 달러에서 앞으로 5년간 28억 달러까지 줄여야 한다.

○ 공산품은 해외진출 확대 기반 마련

한국은 농산물 분야에서 수세적이었던 자세와 달리, 비농산물(NAMA) 분야의 핵심인 공산품에서는 관세·비관세 장벽의 대폭 감축을 요구해 왔다.

이번 잠정 타협안에는 이런 요구들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은 일부 품목의 관세 감축을 면제하는 대신, 공산품 관세 상한 역할을 하는 감축계수를 20∼25% 선으로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져 개도국 시장 진출이 지금보다 확대되게 됐다.

특정 산업의 보호 및 자국 전략산업화를 목표로 관세감축 면제대상을 몇몇 산업에 집중시키는 것을 제한하는 ‘신축성 집중화 방지’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한국이 NAMA 협상에서 핵심 전략으로 삼아 왔던 분야별 자유화 협상도 일정 부분 진전을 거뒀다.

이에 따라 국내 산업계에서는 최종 합의가 이뤄져 관세 인하 및 비관세장벽 완화 조치가 취해지면 가전, 자동차, 조선 등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공산품의 해외 수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 분야별 어떤 지위 인정받느냐가 관건

DDA 각료회의에서 잠정 합의안이 최종 타결되면, 한국 등 각국은 합의안(세부원칙)에 따라 ‘이행계획서’를 만들고 회원국 전체에 제출한다.

정부는 농산품과 관련해서는 개도국, 공산품은 선진국 지위를 전제로 이행계획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정부는 농산물 분야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보고 있다. 만약 일부 회원국이 한국의 지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개별 협상을 벌여 품목별 감축률이나 ‘저율관세 의무수입량(TRQ)’ 등을 조정해야 한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지지부진하던 다자간 협상이 극적인 돌파구를 찾았지만 이행계획서 제출 단계에서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설 수 있어 최종 협상 타결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특별품목, 민감품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음. 다만 개방 충격이 큰 품목일수록 관세율이 높게 책정된 만큼 고(高)관세율 품목이 특별품목 민감품목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음. 관세화가 아예 유예돼 있는 쌀이 가장 민감한 품목임.

※ 특별품목은 개발도상국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관세를 덜 내리거나 아예 내리지 않을 수 있는 품목. 민감품목은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주장할 수 있으며 관세를 덜 줄이는 대신 저율관세 의무수입량(TRQ)을 늘려야 하는 품목.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다자협상 타결땐 FTA효과 줄어들수도▼

전문가 “FTA가 개방 심도 깊어… ‘질 높은 협정’ 계속 추진을”

25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주요국 각료회의에서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산물 및 비농산물(NAMA) 분야 자유화 세부원칙에 대한 잠정 합의안이 도출됨에 따라 다자간 무역자유화가 급진전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자간 협정’이라는 세계 무역의 새로운 질서가 짜이면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 등 ‘양자 협정’을 중심으로 진행해 온 각국의 무역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DDA는 한미 FTA에 이어 한-유럽연합(EU) 등과 동시다발적으로 FTA 체결을 추진해온 한국의 통상 정책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DDA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이후 변화한 세계 무역환경을 반영하기 위해 2001년 11월 출범했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농산물 수출국과 수입국 등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 좀처럼 협상이 진척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미국 한국 등은 다자간 협상 대신 양자간 협상인 FTA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중재안을 담은 의장 수정안이 배포되고 이번 제네바 각료회의에서 다수의 주요 교역국이 타협안에 합의함에 따라 이제 DDA는 타결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DDA 최종 타결까지는 앞으로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타결이 된다면 FTA 협상보다 훨씬 범위가 큰 시장 개방이 이뤄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양자 협정인 FTA는 다자간 협정보다 개방의 폭이 크고 심도도 깊다. 하지만 DDA가 타결되면 한미 FTA의 ‘선점 효과’는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일본 등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은 나라도 미국에 수출할 때 DDA에 따른 관세 인하 혜택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DDA 협상이 속도를 높인다면 연내 타결을 목표로 진행 중인 한-EU FTA 협상의 일정과 내용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FTA 협상에서 EU 측에 자동차 관세의 조기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다자간 협정을 통해 자동차 분야의 관세 인하 일정이 결정되면 한국 측의 요구안인 ‘관세 조기 철폐’는 의미가 줄어든다.

통상교섭본부 고위 관계자는 “DDA가 타결될 가능성이 커지면 한-EU FTA 협상에서 관세장벽 철폐 분야의 비중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DDA 협상의 추이를 봐 가며 FTA 협상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DDA가 진척돼 FTA의 의미가 다소 축소되더라도 세계 각국과 추진해 온 FTA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교수는 “DDA 진척과 병행해 비관세 장벽 부문을 포괄하는 ‘질 높은 FTA’를 계속 추진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건수를 늘리는 양적인 정책보다 서비스, 투자 분야까지 포함하는 ‘질 높은 FTA’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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