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스카우트 전쟁

  • 입력 2008년 7월 29일 18시 05분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인 A 씨(44)는 타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를 집중 영입하던 지난해 하반기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 어느 날 아침 이빨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손으로 이빨을 건드린 순간 이빨 6개가 한꺼번에 빠져버린 것.

A 씨는 이빨을 잃은 원인이 애널리스트 충원 과정에서 받은 '과도한 스트레스'라고 추정한다. 평소 치아 관리를 잘 해 온 데다 이빨이 한꺼번에 빠질 만한 나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A 씨는 "입사가 결정된 애널리스트가 출근 하루 전날 밤에 '마음이 바뀌었다'며 전화로 입사 거부를 통보하는 일을 많이 겪는 등 인력 스카우트 전쟁의 스트레스가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육성하기 위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8개 신설 증권사들이 다음주부터 본격 영업에 나서면서 증권업계는 우수인력 확보를 위한 '무한혈투'에 돌입했다.

금융위원회가 25일 IBK투자증권과 한국SC투자증권 등 8개 신설 증권사의 영업을 본허가하면서 국내 증권사는 54개에서 현재 62개로 늘어났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증권업계의 인재 영입 경쟁은 고액 연봉을 제시해 실력 있는 인력을 개별적으로 끌어오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신생 증권사가 시장에 많이 진입하면서 우수인력을 통째로 빼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애널리스트는 물론 영업, 기획 등 전(全) 분야의 인력이 망라돼 있다.

신생사인 LIG투자증권은 전체 인력 67명 가운데 28명(42%)을 우리투자증권에서 영입했다. 우리투자증권에서 법인영업을 총괄했던 김경규 전 상무는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했던 안수웅 전 부장은 상무급인 리서치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우리투자증권 법인영업부문에서는 김경규 부사장을 포함해 6명이 한꺼번에 LIG투자증권으로 이적했다.

대우증권에서는 간판급 애널리스트인 이경수 연구위원과 영업직 7명 등 임직원 15명이 신생사인 토러스투자증권으로 이직했다. 교보증권에서는 임홍재 IB투자본부장이 IBK투자증권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투자업무를 담당한 실무직원 5명도 함께 이동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앞 다퉈 '몸집 불리기'에 나서면서 인력 수요가 급증해 증권사 인력의 몸값이 급등하고 있다. 애널리스트 연봉은 1년 전에 비해 30%가량 급등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의 연봉은 현재 3억~5억 원에 이른다.

스카우트 전쟁에 편승해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을 요구하는 애널리스트도 나오고 있다. 한 4년차 애널리스트는 최근 LIG투자증권 측에 업계 평균(1억 원 내외)의 2.5배인 2억5000만 원을 연봉했다가 거절을 당하기도 했다.

애널리스트 영입 비용이 급증하자 해당 분야 전문가를 뽑아 아예 신규 애널리스트로 육성하는 회사도 나오고 있다.

대신증권은 상반기에 대우조선해양과 삼성SDI, LG화학 등에서 내공을 쌓은 전문가 6명을 애널리스트로 채용했다.

굿모닝신한증권 박선호 수석연구원은 "증권산업에서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데다 시장 확대로 인력에 대한 초과 수요가 발생해 스카우트 경쟁이 가열된 것"이라며 "인재 영입 경쟁이 지나치면 시장질서가 깨지는 폐해가 있는 만큼 앞으로는 업계 전체가 인재 육성에 힘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이지연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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