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코리아 고비는 넘겨… 한국시장 ‘흥미’ 유발해야 컴백”

  • 입력 2008년 8월 1일 03시 04분


■외국인 투자책임자 4명에게 들어본‘한국을 떠나는이유-조언’

《최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이 끊임없이 주식을 팔고 나가면서 전체 시가총액에서 외국인 보유지분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1년 이후 처음으로 20%대로 떨어졌다. 또 지난 수년간 순매수세를 보이던 채권 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은 서서히 발을 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들의 이 같은 자산 회수는 신흥시장(이머징 마켓)에서 어느 정도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지만 자칫 환율 상승 등 금융시장 불안과 국가신인도 하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한국 주식 및 채권 투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의 아시아지역 총괄 대표 또는 최고투자책임자(CIO) 4명을 긴급 e메일 인터뷰했다. 캐서린 매튜스 피델리티 아시아태평양 CIO, 제프리 웡 UBS글로벌자산운용 아시아태평양 및 이머징마켓 대표,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에셋매니지먼트 대표 겸 수석펀드매니저, 닉 스콧 블랙록 아시아지역 주식운용 총괄 전무 등이 인터뷰에 응했다. 이들은 인터뷰를 통해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흥미나 고유한 매력이 예전 같지 않으며 대외개방형인 한국 경제가 최근 글로벌 경기 악화의 영향을 다른 국가보다 더 많이 받는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인의 매도세가 이제 한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과거처럼 외국인이 열정적으로 한국 주식을 사는 현상을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국내의 개인, 기관투자가들의 증시 투자 확대가 금융시장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1.“한국 주식, 더는 싸지 않다”

웡 대표는 “한국 기업들의 실적 대비 주가를 보면 과거와 비교해볼 때 한국 주식이 특별히 싸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주가수익비율(PER)이 다른 아시아 주식에 비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 그는 “최근 2년 동안은 브릭스(BRICs) 국가인 중국 인도, 그리고 정권교체를 이뤄 양안(兩岸)관계 개선이 기대되는 대만에 주로 자금이 몰렸다”며 “이에 반해 한국은 상대적으로 덜 흥미로운 시장으로 인식됐다”고 덧붙였다.

스콧 전무도 “한국 시장이 그동안은 저평가돼 있어 외국인 투자가들이 선호했지만 저평가 수준이 다른 시장과 비슷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투자 비중을 축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의 순매도는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얻은 차익을 실현하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매튜스 CIO는 “외국인 투자가들은 최근 수년간 다른 아시아 시장보다 한국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수익률을 냈다”며 “여기에 외국인 투자 비중 역시 다른 나라보다 높았고 국제유가 상승이 무역수지 등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면서 외국인들의 차익 실현에 촉매제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외국인의 급격한 자금 회수가 한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는 데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셀 코리아’가 아닌 ‘셀 이머징’ 현상이라는 뜻. 모비우스 대표는 “이머징 마켓의 자산가치 하락은 투자심리 악화와 미국 시장의 부진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2.대외변수에 특히 취약

한국 경제만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도 다수 지적됐다. 우선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유가 등 대외 악재에 한국이 특히 취약하다는 우려가 컸다.

매튜스 CIO는 “한국 경제가 화학 철강 자동차 조선 등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산업 쪽에 치우쳐 있다”며 “한국이 다른 시장보다 고유가에 더 많이 노출돼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국인 투자가들의 매도세는 원화 약세를 부추겼고 이는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이어지면서 금융시장 불안을 더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웡 대표도 “한국은 하강국면에 들어간 세계 경기에 더 취약하고 민감한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외국인들은 이런 시장을 조심스러워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높은 민간 부채는 한국 경제의 큰 리스크”라며 “인플레이션 확대와 이로 인한 금리 인상은 내수를 꺾을 수 있고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감소한다면 경제의 큰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현재 개인 부채 규모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80% 선까지 증가했다.

스콧 전무도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한국의 수출 둔화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또 “국제 원자재 가격 강세로 혜택을 보는 업종이 한국에는 별로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3.촛불시위도 투자에 악영향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도 외국인 투자가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웡 대표는 “이 문제들은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에 영향을 줬기 때문에 이를 외국인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가 공공부문 민영화, 규제 완화 등의 정책수행 역량에 의문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계속 지연되고 있는 론스타와 HSBC 간의 외환은행 매각 문제도 국내 주식시장 수익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모비우스 대표도 “한국 기업들의 기업 지배구조는 비록 지난 몇 년간 발전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더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콧 전무는 한국의 노조 문제가 물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노조활동으로 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 이는 한국 경제에 장기간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결국 투자자의 우려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특히 건설업종에 대한 정부 규제완화가 지연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 때문에 기업실적 전망에 대한 우려도 증가하고 있다”고 봤다.

매튜스 CIO는 “지정학적인 불안이나 노조의 파업 등은 이미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새로운 이슈가 아니라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다만 소득 감소와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계비의 증가가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4.고비는 지났지만 회복은 미지수

웡 대표는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매도세가 정점을 지났을 수도 있다”면서도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는 한 외국인들이 다시 한국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국민연금과 개인투자자의 펀드 등 풍부한 국내 자금이 한국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 매도가 한국의 금융 불안을 야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매튜스 CIO도 “시장은 바닥에 근접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면서도 “정확한 기업 실적 전망이 어려운 만큼 이런 현상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모비우스 대표도 “외국인 투자가들이 언제 한국에 다시 들어올지 예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그는 “단기적으로는 투자자금이 더 빠져나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시장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자금 회수 현상이 전적으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악화에 의한 것으로 보긴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

스콧 전무는 “주가가 하락해 한국 시장이 다시 저평가되면 외국인들이 회귀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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