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전 11시경 인천 부평구 갈산동 콜트악기㈜ 부평공장.
회사 정문에는 경영진을 비난하는 현수막과 대자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 보니 정리해고자들이 농성하는 천막이 설치됐고, 공장 곳곳에 경영진에 대한 욕설과 투쟁구호가 스프레이로 적혀 있었다.
이한수 생산부장은 "노조의 강경투쟁 때문에 직원 120여 명이 평생직장을 잃고 모두 거리로 나앉게 됐다"며 씁쓸해했다.
콜트악기는 전기기타와 통기타 매출부문(1500억 원·지난해 말 기준)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기업이다. 국내 첫 피아노와 기타 생산업체인 수도피아노사를 운영한 선친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은 박영호(62) 사장이 1973년 설립했다.
부평공장을 포함해 인도네시아와 중국에도 현지공장을 세워 '콜트'라는 브랜드와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전 세계에 기타를 공급하는 수출업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콜트악기의 모기업인 부평공장은 31일 문을 닫는다.
노조의 장기 파업에 따른 경영압박과 적자가 계속 누적돼 더 이상 회사를 경영하기 힘들게 된 것. 노조는 2002년 금속노조연맹에 가입한 뒤 매년 임금인상, 노조활동시간 연장 등을 요구하며 잦은 파업을 했다.
박 사장은 특히 노조가 44일간이나 파업을 벌인 2005년 8월 사실상 공장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세계적인 전기기타업체이자 최대 바이어인 미국 팬더사 관계자가 공장을 방문하기로 해 파업하던 노조에 "하루만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 달라"고 애원했으나 노조는 이를 묵살했다. 일부 노조원은 그에게 욕설과 함께 승용차에 침을 뱉는 등 모욕을 줬다.
노조의 파업으로 생산성이 떨어져 수출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해외 바이어들이 고개를 돌렸다.
팬더사를 비롯한 주요 바이어들이 거래처를 다른 회사로 바꿨다. 경영은 적자로 돌아서 2006년 18억 원, 2007년 25억 원으로 적자액이 늘어났다. 본격적으로 파업이 시작된 2002년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액은 52억 원에 이른다.
특히 매년 부평공장 매출의 60%를 주문했던 일본의 아이바네즈사가 1월부터 주문을 끊어 더욱 힘든 상황으로 몰렸다.
결국 박 사장은 지난달 경영진 회의를 소집, 해외공장은 놔두고 부평공장만 폐업하기로 했다.
박 사장은 "내 분신과도 같은 부평공장을 살리고 싶었지만 툭하면 파업을 일삼는 노조 때문에 도저히 경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한국 제조업체가 주력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이유를 이제는 노동자들도 심각하게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노조덕분에…
지난달 31일 오후 3시 인천 동구 송현동 동국제강 인천제강소 100t 제강공장.
대형 전기로가 설치돼 있어 실내온도가 50도를 훌쩍 넘었지만 제강팀 직원 20여 명이 크레인을 이용해 열심히 고철을 옮기고 있었다.
이들의 얼굴에는 구슬땀이 연방 흘러내렸고, 작업복은 흠뻑 젖었지만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16년째 이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임상길(43) 씨는 "경제가 어려운데도 회사가 지난달 직원들에게 성과급 200%와 특별격려금 150만 원을 지급해 사기가 크게 올라 있는 상태"라며 환하게 웃었다.
1994년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 회사 노조는 3월 임금 및 단체협상을 회사 측에 위임했다. 1994년부터 14년 연속 무교섭 임단협이다.
올해 브라질에서 고로사업을 추진하고, 충남 당진에 공장을 짓는 등 경영여건에 변화가 있기 때문에 회사에 임단협에 따른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해 무조건 위임하기로 했다는 것이 박상규(44) 노조위원장의 설명이다.
노조는 대의원총회를 열어 임단협 위임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에 회사는 올 직원 급여를 5% 인상하고, 대학생 자녀의 학자금을 전액 지원하는 보너스를 내놓아 화답했다.
1987년 설립된 이 회사 노조는 무파업을 선언하기 전까지 임단협에 불만을 품고 수시로 장기 파업을 벌이고, 심지어 사옥에 불을 지르기도 하는 등 강성노조로 유명했다.
그러나 잦은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로 회사가 경영에 위기를 겪고, 급여까지 동결되자 노조 내부에서 지나친 파업 행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다.
파업으로 전기로가 꺼지면 이를 다시 정상화시키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 노사 모두 공멸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결국 노조가 먼저 무파업을 제안했다.
파업이 사라지자 회사의 매출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1993년 8000억 원에 불과했으나 무파업을 선언한 1994년 9058억 원으로 뛰더니 매년 매출이 늘어나 지난해에는 3조7255억 원에 달했다. 올해 매출은 5조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회사는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과 1999년을 제외하고 매년 4~10%씩 임금을 인상해 직원들에게 보답했다.
박 위원장은 "노사의 신뢰가 깊어 14년 연속 무교섭 임단협 전통을 잇고 있다"며 "잦은 파업으로 회사가 문을 닫거나 경쟁력이 떨어져 해외로 이전한다면 노조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