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이어… 20여년 한결같이… 기업-스포츠 ‘끈끈한 인연’

  • 입력 2008년 8월 8일 02시 54분


이건희 前회장, 야구-골프-럭비 ‘삼성 3대스포츠’ 지정

정몽구회장에 이어 정의선 양궁협회장도 통 큰 지원

KT 주공 포스코, 사격-근대5종-체조 ‘키다리 아저씨’

《스포츠를 ‘기업경영의 축소판’이라고 비유하곤 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스포츠에서 이기기 위한 감독의 전략과 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고경영자(CEO)의 전략’을 비교한 보고서를 내놓은 적도 있다. 철인3종경기 마니아이자 대한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협회장인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스포츠와 경영 모두 한계에 도전하는 것으로 결국 같다”고 말했다. 8일 개막하는 중국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계기로 기업과 스포츠의 다양한 인연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 기업들 스포츠의 든든한 버팀목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을 3년여 앞둔 1985년 4월경 당시 정부는 체조, 사격, 근대5종 같은 비인기 종목을 후원할 민간 기업이 나서지 않자 일부 공기업에 이를 떠넘기듯 안겼다.

그래서 대한주택공사는 이때부터 근대5종을 후원하고 있다. 대한근대5종연맹 회장도 주택공사 사장이 ‘당연직’으로 승계해 왔다. KT(옛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사격을, 포스코(옛 포항제철)가 체조를 맡게 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이처럼 억지로 맺어진 인연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게 스포츠의 매력”이라고 이들 기업 관계자들은 입이 모아 말했다.

20년 넘게 사격과 여자하키 선수단을 운영해 온 KT의 이길주 홍보실장은 “두 종목 모두 올림픽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KT=한국 대표 통신사’란 이미지를 부각시켜 줬다”며 “이번 올림픽에서도 KT 사격단의 진종오 선수는 가장 유력한 금메달리스트 후보”라고 말했다.

1996년부터 배드민턴 선수단을 운영해 온 삼성전기에서는 배드민턴이 나라로 치면 일종의 ‘국기(國技)’로 인정받는다.

세계 최강인 한국 양궁의 든든한 버팀목은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다.

‘양궁의 대부(代父)’로도 불리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1985∼1997년 4차례나 양궁협회장을 지냈다. 그 기간에 양궁 발전을 위해 내놓은 돈만 2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양궁협회장은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다. 정 사장 역시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따면 원하는 건 다해 주겠다”며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밝히고 있다.

○ 스포츠도 공부다

한국 유일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신(新)경영을 선언한 후 야구, 럭비, 골프를 ‘삼성의 3대 스포츠’로 지정했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야구에서는 스타플레이어 발굴과 말없이 고생하는 캐처의 정신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경기하는 럭비에서는 투지와 추진력을, 심판이 안 따라다니는 골프에서는 에티켓과 자율을 배우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표적인 테니스 애찬론자이다. 최 회장은 평소 “테니스의 매력은 매너와 분위기”라며 “동반자와 서로 마주 보며 운동하다 보면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이 2003년 후원 종목으로 펜싱을 고른 이유도 ‘정교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매너를 중시하는 스포츠’라는 특성 때문이었다.

SK그룹은 ‘왜소한 체격 조건을 갖고도 불굴의 투지와 팀워크로 좋은 성적을 내는 한국 핸드볼의 정신을 본받자’는 뜻으로 지난해부터 핸드볼 대표팀도 후원하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장 겸 세계배드민턴연맹 회장인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은 ‘스포츠도 공부’라는 지론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강 회장은 “스포츠를 통한 교육도 학과 공부 못지않은 효과를 가져오는 만큼 스포츠 지원도 교육 사업의 일환”이라는 논리를 펴오고 있다.

체육회 56개 경기단체장 중 37명이 전현직 기업인

대부분 스포츠 마니아


▲ 영상취재 : 김재명 기자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현재 소속 경기단체장 56명 중 전·현직 기업인은 37명(66.1%)에 이른다.

1970, 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기업인이 경기단체장을 맡는 것은 “국가에 봉사하는 차원에서 비인기 종목을 지원하라”는 정부의 압력에 따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서울 올림픽 이후 스포츠마케팅 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CEO들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자진해서 후원하거나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늘어났다.

1982∼1997년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낸 이건희 전 회장은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 레슬링 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는 2003년 레슬링 명예 10단증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받기도 했다.

2003년부터 대한테니스협회장을 맡고 있는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은 테니스 마니아. 조 회장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테니스 동호회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솔그룹 관계자는 “매년 사내 테니스 대회인 한솔배 테니스 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조 회장은 꼭 출전한다. 최고 3위에 입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일반 동호인 이상의 실력을 지녔다”고 전했다.

대한체조협회장인 박득표 전 포스코건설 상임고문은 ‘체조 경기장에서 업무를 보는 CEO’란 말이 있을 정도로 경기 현장을 꼬박꼬박 찾는 협회장으로 유명하다. 그는 요즘도 “체조 경기장이 관중으로 가득 차야 한다”는 바람을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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