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타는 ‘돈’마름

  • 입력 2008년 8월 9일 03시 01분


경기 김포시의 주방설비 제조업체인 A사의 김모 사장은 요즘 하루하루 속이 타 들어간다. 사업자금을 확보하려고 갖고 있던 400여 평의 땅을 석 달 전에 내놨지만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사려는 사람의 문의조차 없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급한 대로 은행에서 10억 원 정도 먼저 빌렸다가 부동산을 팔아 갚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면서 “대출금리가 많이 올랐다는데 내년 상반기까지 땅이 안 팔리면 이자를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이 회사 운영자금을 확보하려고 부동산 등의 자산을 파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는 등 자금은 더 필요해졌지만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각종 토지거래 규제로 공장 매각도 쉽지 않아 중소기업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 땅 팔고, 공장 팔고… 자금 확보 초비상

연 매출 50억 원 정도인 철제용기 생산업체 A사는 자금난에 시달리다 최근 공장 라인 4개 중 2개를 매각하기로 했다. 원자재 가격은 오르고 납품가는 제자리여서 공장을 돌리는 대신 생산설비를 팔아 자금 확보에 나선 것.

부동산 미분양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서는 이름이 많이 알려진 중견업체들까지 골프장이나 토지 등 보유자산을 매각해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기업대출 담당자는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지만 중소기업으로 갈 돈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중 대기업 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77% 늘어 지난해 말(31.19%)과 비교해 증가세가 확대됐다. 반면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은 23.89%에서 18.96%로 낮아졌다.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같이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은행들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면 중소기업에 대한 기존 대출까지 급격히 부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올린 뒤 “가계 부문은 원리금 상환에 큰 문제가 없는데 걱정되는 부문은 영세기업과 중소기업 쪽”이라고 설명했다.

○ “공장 용지 매각 제한 규제 풀어야”

중소기업들은 땅, 공장을 팔려고 내놔도 부동산 시장의 극심한 침체로 거래가 안 돼 더욱 답답해하고 있다.

직원 100명 규모인 지방의 한 전자전기업체는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빌린 은행 빚을 갚으려고 땅과 공장을 내놨지만 아직 팔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터무니없이 헐값을 부르는 사람 외에 제대로 된 구매자가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5년 11월 이후 매입한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공장 용지는 4년 이내에 매각할 수 없다’는 취지의 국토계획법 시행령의 규제도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알루미늄 가공업체 Y사를 경영하는 권모 사장은 “원자재 가격이 올라 자금 확보가 너무 힘들다”며 “부동산이라도 매각했으면 하는데 공장 터를 산 지 4년이 안 돼 팔 수도 없다”며 답답해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정부에 4년 이내 공장 매각 제한 규제를 풀어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정부도 관련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9월부터 경영이 악화돼 파산 직전에 이른 중소기업은 4년 이내라도 공장을 매각할 수 있는 길을 터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