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은 여름 정기세일이 끝난 직후 1주일간 대규모 화장품 판촉 행사를 진행했다. 스킨과 로션, 에센스, 크림 등을 한데 묶은 기획상품이 52개에 이르렀다.
예년에는 봄, 가을 1년에 두 차례 하던 행사였지만 올해는 부랴부랴 한 차례 더 편성했다.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화장품은 팔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은성 현대백화점 상품기획자(MD)는 “소비심리가 얼었다고 하지만 올가을에 선보일 신규 화장품은 예약주문을 받을 정도로 화장품 소비는 예년보다 20% 증가했다”고 전했다.
○ 화장품 소비 日-프랑스와 비슷
올 2분기(4∼6월) 민간소비는 2004년 2분기(―0.1%) 이후 4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했다. 일반적으로 꽁꽁 얼어버린 소비심리는 필수 소비재인 화장품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으로선 마진이 적은 저가(低價) 제품으로 소비자들이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대우증권이 최근 내놓은 ‘화장품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9624달러 가운데 화장품 소비에 쓴 비용은 130달러(0.7%)다. 이는 세계적으로 화장품 소비 비중이 가장 높은 일본이나 프랑스와 비슷하다.
대우증권은 한국의 GDP가 일본의 절반 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화장품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승환 대우증권 연구원은 “국내 화장품업계 1, 2위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2005년 이후 매출 성장률이 GDP 증가율을 웃돌고 있다”며 “이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화장품이 다른 제품군보다 구매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고가(高價) 화장품을 선호하는 추세도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원은 “국내 여성들은 개인의 미(美)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며 “대내외 경기 전망은 어둡지만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화장품만큼은 더 값비싼 것을 쓰는 ‘트레이딩 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SKII의 10만 원짜리 에센스 제품을 쓰던 소비자가 미샤나 페이스샵 같은 저가 화장품으로 바꾸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설화수 매출 5000억…해외명품 수준
백인수 롯데유통산업연구소 소장도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어갈 때 소비자는 가격 대비 효용을 고려하는 가치구매보다는 자신의 소득수준을 넘어 과시를 위해 소비하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고 분석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한방화장품 ‘설화수’는 한 해 매출이 5000억 원에 이른다. 국내 화장품업계에서 매출 5000억 원이 넘는 브랜드는 국내외 브랜드를 통틀어 설화수가 유일하다. 이 브랜드의 125mL짜리 스킨 가격은 5만∼5만5000원 선으로 해외 브랜드 제품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윤아 아모레퍼시픽 홍보팀 과장은 “외환위기 직후 해외 브랜드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보다 기능에 초점을 둔 고급화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관련기사]1000원 거래도 당당히 카드로…소액영수증 결제 확대
[관련기사]“CMA, 하루만 맡겨도 고금리” 덥석 먹으면 다쳐요
[관련기사]‘올림픽 특수’ 희비…홈쇼핑은 웃고, 대형마트 울고
[관련기사]高등어도 高급어?…어획량 줄면서 갈치가격과 비슷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