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력-단순노무자 크게 부족… 신규 수주 힘들 정도
토요일인 9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있는 SK건설 구내식당. 주5일 근무제로 휴일인데도 직원들로 발 디딜 팀이 없다. 최근 해외 건설 수주 급증으로 주말에 출근하는 직원이 늘자 회사 측이 주말에도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토요일에는 평균 300여 명, 일요일에도 150명가량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며 “해외 건설 관련 업무가 밀려 여름휴가는 생각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사의 해외 플랜트 수주가 늘면서 업체들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중동지역 국가에서 따낸 발전, 석유화학, 정유 플랜트 공사로 경상수지가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지만 현장에선 단순 노무자뿐 아니라 공사관리 및 기술 인력이 부족해 자칫 약속된 공기(工期)를 맞추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해외공사 급증에 인력난 호소
올 1월부터 7월 말까지 국내 건설사의 해외건설 수주 금액은 347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수주 금액(171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GS건설, SK건설, 대림산업, 현대건설 등 국내 건설사가 공동 수주한 63억 달러 규모의 쿠웨이트 알주르 정유공장 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면서 각 건설사는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고유가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중동 산유국들이 플랜트 발주를 늘리는 데다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신도시 개발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발주를 늘리고 있는 것.
하지만 국내 건설사의 인력 공급은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국내 업체는 1차 오일쇼크 이후 해외 건설이 급감했던 1984년과 1997년 외환위기 때 두 차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해외 건설 인력을 대폭 감축해 인력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이미 수주한 물량이 어느 정도 소화될 때까지 신규 수주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발주처에서 과부하가 우려되는 한국 업체에 사업을 맡기기를 기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현지 인력에 의존…전문교육 필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업체들은 필리핀, 인도 등 다른 나라 인력을 현지 인력사무소를 통해 고용하고 있다. 처음엔 단순 건설노동자 위주로 채용하다가 최근엔 엔지니어급 인력까지 외국인으로 대체하는 추세다.
SK건설은 최근 홍콩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국 출신 개발업자(디벨로퍼)를 영입하는 등 설계 파트 쪽의 외국인 채용을 늘리고 있다. 대림산업도 지난달 ‘글로벌 인사팀’이라는 조직을 신설해 엔지니어급 해외 전문인력 조기 확보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카타르 나킬랏에서 수리조선소 공사를 진행 중인 대우건설 허현 대리는 “가동 인력 3000명 중 본사 직원은 70명 정도”라며 “현장 지휘는 필리핀 출신 노동자가, 작업은 방글라데시 및 인도 출신 노동자들이 주로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장은 외국 인력으로 인력난을 메우고 있지만 인력풀이 좁은 상황에서 한꺼번에 공사가 몰리다 보니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제3국 인력들이 여기저기 업체를 옮겨 다니며 몸값을 올리는 사례도 나타난다.
해외건설협회 김태엽 기획팀장은 “기한을 맞추기 위해 며칠씩 밤을 새우는 우리나라 직원들과 달리 외국 인력은 정시에 퇴근해 버리는 등 문화 차이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건설사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플랜트학회 이재헌 회장은 “해외 건설은 공학뿐 아니라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경영학, 외국법 등 법학이 총동원되는 분야”라며 “정부 차원에서 해외 플랜트 전담 부서를 만들고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기술력에서 앞서는 선진국이나 값싼 인건비를 내세우는 중국에 비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