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차손 피하려다 고환율 강풍에 ‘혼쭐’

  • 입력 2008년 8월 18일 02시 55분


《14일 대우조선해양은 선물환과 통화옵션 거래로 6월 말 현재 1485억 원의 평가손실을 봤다고 공시했다. 환 헤지(환차손 위험 회피)를 위해 거래했는데 예상치 못한 환율 급등으로 평가손실이 났다는 것. 이날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해 20개 상장기업이 파생상품 관련 손실을 무더기로 공시했다. 올해 상반기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 가치는 하락)으로 환 헤지를 위해 통화옵션 파생상품에 가입한 기업의 손실이 불어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은 물론 리스크 관련 조직을 갖춘 대기업까지 파생상품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나 대기업의 파생상품 리스크 관리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



○ 환리스크 조직 갖춘 대기업까지 타격

17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파생상품 거래를 했다고 공시한 기업은 68개, 평가손실액은 1조441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시장 상장기업이 30곳(평가손실액도 8399억 원), 코스닥시장 상장기업이 38곳(평가손실액 6014억 원)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중에서는 대우조선해양 금호타이어 STX조선 등의 대기업도 통화옵션 등의 파생상품 거래로 평가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주식스왑과 주식옵션 등에 투자했다가 309억7890만 원의 손실을 봤다고 공시했다.

파생상품 손실을 본 대부분의 기업은 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녹인녹아웃(KIKO) 옵션’ 등 환차손 회피를 위해 통화옵션 거래에 나섰다가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평가손실을 낸 것으로 보인다.

KIKO 옵션은 환율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미리 정한 환율에 약정 금액을 파는 파생금융상품. 환율이 이 범위 안에 머물면 기업은 환차손을 피하고 일정액의 투자수익까지 얻을 수 있지만 환율이 급등해 그 범위를 벗어나면 계약금액의 2, 3배를 시장 환율보다 낮은 수준에서 팔아야 해 큰 손실을 보게 된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12월 평균 930.76원에서 올해 6월 1031.07원으로 급등하면서 900원대에서 환율이 움직일 것으로 보고 KIKO 옵션상품에 가입한 기업들의 손실이 불어난 것이다.

○ 투기적 목적 파생상품 거래는 ‘위험’

파생상품 거래는 주가 환율 금리의 미래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금융상품. 위탁증거금만으로도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헤징 차원을 넘어 고수익을 올리려는 투기성 거래를 하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1994년 글로벌 생활용품기업인 P&G가 전문적인 지식 없이 투기적인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1억5700만 달러의 손실을 본 사례가 대표적이다. P&G 외에도 상당수 미국의 제조업체들이 회사 내에 트레이딩 부서를 만들어 투기적 목적으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봤다. 미국 제조회사들은 이 사건 이후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를 철저하게 리스크 관리용으로만 제한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4월 ‘파생금융상품 리스크관리 실패사례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내외의 주요 파생상품 관리 실패의 요인으로 고성장 고수익에 따른 리스크 관리 해이 등의 내부통제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원상필 동양종금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원-달러 환율이 예상을 너무 벗어났기 때문에 손실이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면서도 “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 외에도 투자 수익까지 노리며 파생상품에 뛰어들면서 피해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KIKO 계약 잔액이 연간 수출액을 넘어설 정도로 과도하게 헤지를 한 기업이 71곳(대기업 3곳, 중소기업 68곳)이며 이들 기업의 KIKO 계약 잔액이 연간 수출액의 평균 166.7%에 이른다고 밝혔다. 수출대금보다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바람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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