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산 주식이 원금을 까먹고 있는데 노후를 대비한 퇴직연금펀드마저 죽을 쑤고 있어요.
퇴직금이 줄어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황당합니다.”
증시가 고점(高點)이었던 지난해 10월. 4000만 원을 퇴직연금펀드에 넣었던 모 대기업 부장인
정모(42) 씨는 최근 증시 하락으로 퇴직연금펀드가 원금 손실을 입자 이같이 고충을 토로했다.
당시 회사가 퇴직금 제도를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면서 확정기여형(DC·Defined Contribution)에 가입한
정 씨는 퇴직연금을 불리려는 생각으로 퇴직 적립금 5000만 원 중 4000만 원을 퇴직연금펀드에 넣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꼬여 지난해 11월 이후부터 지난달까지 납입된 200만 원을 포함해 4600만 원의
원금이 들어갔지만 현재 펀드 잔액은 4374만 원으로 오히려 226만 원이 줄었다. >>
국내 증시가 올해 들어 크게 하락하면서 퇴직연금을 펀드에 많이 투자한 직장인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말이나 11월 초와 같이 증시가 고점이었던 시기에 퇴직연금을 펀드 위주로 운용한 직장인들은 적립금 원금이 줄어드는 등 손실이 컸다. 이들은 대부분 퇴직금이 줄어드는 경험은 처음이어서 심리적인 타격이 크다.
○ 확정기여형 원금 줄어들 수도
정부가 2005년 12월 도입한 퇴직연금은 기업체가 도산해 근로자들이 퇴직금을 떼이는 부작용을 막고 근로자들이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적립금을 외부 금융기관에 맡겨 운용하는 제도. 현재 5인 이상 사업장이 가입 대상이며, 현행 퇴직금 제도를 유지하거나 노사 합의로 퇴직연금으로 변경할 수 있다.
확정기여형은 사용자가 미리 정해진 금액을 부담하지만 적립금을 운용하는 방법은 근로자가 정하기 때문에 증시가 오르면 퇴직연금이 늘어나지만 요즘 같이 증시가 나빠지면 퇴직연금이 적립한 원금보다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위험 때문에 확정기여형은 주식에 대한 직접투자가 금지돼 있고, 간접투자도 주식편입 비율이 40%까지인 펀드에 국한된다.
지난해 5월 퇴직연금에 가입한 한 중소기업 Y(47) 부장은 올 5월까지 두 차례 받은 퇴직적립금 669만 원을 모두 퇴직연금펀드에 넣은 결과 현재는 648만 원으로 21만 원(3.1%)이 줄었다. 그는 “은행 정기예금에 이 돈을 넣었다면 5% 정도는 수익이 났을 텐데 결과적으로 기회비용까지 합하면 10% 정도 손실을 입은 셈”이라며 아쉬워했다.
○ 확정급여형은 원금 수급 보장
확정급여형(DB·Defined Benefit)은 근로자가 받을 퇴직연금이 사전에 정해지는 대신 자금 운용은 사용자(회사)가 정하고 그에 따른 손익도 회사가 책임진다. 따라서 운용실적이 나쁘면 근로자가 받는 퇴직급여는 변동이 없지만 회사가 손실 난 만큼을 메워야 하기 때문에 운용실적이 악화되면 기업에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
확정급여형에 가입한 중소기업 A 사는 지난해 10월 10억 원을 퇴직연금펀드에 가입한 결과 현재 8억8782만 원으로 1억1218만 원(11.2%)이 줄었다. 주식 등에 대한 운용 규제가 없는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퇴직연금 운용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어 기업이 부실화되기도 한다. GM은 2002년 연금 부족분이 193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이듬해 170억 달러어치의 채권을 발행했다.
하지만 최근 퇴직연금펀드의 최근 2년간 수익률은 11.68∼53.64%로 2006년 8월 이전에 가입한 사람들은 비교적 양호한 수익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투자증권 강성모 퇴직연금연구소장은 “증시가 하락하면서 퇴직연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본인의 투자성향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퇴직연금 자산배분을 어떻게 할지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