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삼성전자 당당할 때 됐잖아요

  • 입력 2008년 8월 20일 02시 59분


<<삼성전자는 하반기(7∼12월)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 신제품 발표행사를 다음 주 초 열 예정입니다. 이번 행사는 제품과 함께 장소도 관심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는 이 행사를 서울 중구 장충동의 신라호텔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회사가 호텔을 빌려 언론에 제품 발표행사를 갖는 것은 약 10개월 만의 일입니다. >>

“김용철 변호사 폭로 후유증

한동안 신제품 발표도 쉬쉬

내주 행사때 자신감 보여주길”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말 세계에서 처음 3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으로 만든 64Gb(기가비트) 낸드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고도 태평로 본사 지하의 국제회의실에서 ‘조용한’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신라호텔 등의 장소를 빌려 화려하게 개발 성과를 공개했던 예년과는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당시 반도체총괄 사장이었던 황창규 사장은 발표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취재진의 점심식사 자리에만 잠깐 들러 짧은 인사말만 했습니다.

올 3월 삼성전자가 야심 차게 준비한 휴대전화 ‘햅틱폰’ 발표, 4월 차세대 DVD인 블루레이 전략 발표, 5월 기업용 프린터 제품 발표회 등도 같은 장소인 본사 지하의 어둑한 국제회의실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작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이후 특검, 이건희 전 회장의 재판 등으로 이어진 삼성그룹의 위기국면에서 여론의 눈총을 의식한 삼성 계열사들이 최대한 자세를 낮춰왔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회사가 시장에서 잘나간다는 말조차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경영 위기라는 평가가 더 마음이 편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비싼 호텔을 빌려 흥청망청한다’는 식의 말이라도 나올까 신경이 쓰여 호텔에서의 공개 행사를 피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제품 발표회는 호텔에서 열어야 제격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요즘에는 천편일률적인 호텔 행사를 벗어나 미술 갤러리, 전시매장 등 특이한 장소를 찾으려는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호텔을 사용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초일류기업 삼성전자의 그간의 형편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성과를 드러내 자랑하고 싶어도 쉬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가치의 극대화라는 기업의 1차적 목적을 스스로 부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거리가 멀다는 현주소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 풍경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김용석 산업부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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