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제과의 ‘부라보콘’은 소비자권장가격이 1500원이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에서는 꼼짝없이 1500원을 다 줘야 한다.
하지만 동네 슈퍼에서는 연중 내내 반값이면 살 수 있다. 700원짜리 ‘죠스바’나 ‘메로나’는 350원, 1500원짜리 ‘설레임’도 750원. 일부 편의점에서도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면 7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덤으로 준다.
지난달 국내 주요 빙과업체들은 원가 상승을 이유로 아이스크림 가격을 평균 45% 올렸지만 대형 마트나 슈퍼마켓에서는 여전히 세일 중이다. 아이스크림의 ‘소비자권장가격’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 영업소 손해는 업체가 보상
아이스크림 가격이 유통 채널별로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아이스크림 시장 특유의 유통구조 때문이다.
빙과업체는 지역별로 직영 영업소나 대리점을 둬 소매점에 아이스크림을 공급한다. 이들 일선 직영 영업소는 본사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요구받기 때문에 월말이나 분기 말이 되면 ‘밀어내기’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덤핑 판매한다.
이렇게 넘겨진 제품들은 중간 매집상 등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유통돼 동네 슈퍼마켓 등지에서 헐값에 팔린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서 마트를 운영 중인 김모 씨는 “아이스크림은 아직 유통기한 표시제가 적용되지 않아 제조일자가 한두 달 지난 재고 제품을 소비자권장가격의 30∼40% 수준에 들여올 수 있다”고 말했다.
덤핑 판매로 직영 영업소들이 입는 손해는 빙과회사가 ‘장려금’ 명목으로 보상해준다. 빙과 대리점을 운영 중인 조모 씨는 “그나마 회사와 정한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이 장려금마저 못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처럼 동네 슈퍼마켓 등 재래 유통시장을 통해 판매되는 아이스크림이 전체 빙과시장의 8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에 비해 재래 유통채널을 통해 팔리는 물량이 많다 보니 빙과업체는 이들 업체에 아이스크림을 보관하는 쇼케이스를 무료로 설치해주고 대금을 후불로 받기도 한다.
○ 4개사가 빙과시장의 80% 차지
이처럼 국내 빙과업계가 가격을 내세워 ‘밀어내기’ 영업을 하는 것은 20년 넘게 롯데제과, 빙그레, 해태제과, 롯데삼강 4개 회사가 1조2000억 원에 이르는 빙과시장의 80%를 점유하는 구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장을 독과점한 4개 회사가 제품 경쟁력으로 점유율을 늘리기보다 경쟁사의 인기 제품을 본뜬 카피 제품을 내놓고 밀어내기 영업으로 엎치락뒤치락 자사(自社)의 비중을 키우려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빙과업체들이 대리점 등에 지원금 명목으로 쓰는 평균 비용은 전체 매출액의 36%에 이른다. 아이스크림의 원가는 소비자가격의 20% 수준이다.
결국 빙과업체들은 비정상적인 유통과정에서 발생한 영업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제품 가격을 올리거나 용량을 줄여 소비자들로 하여금 ‘반값 아이스크림’이라는 착시(錯視) 현상을 불러일으킨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빙과업체들이 원자재 값 인상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기에 앞서 비정상적인 유통구조를 개선해 제값을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