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 악화보다 위기說이 더 위험”

  • 입력 2008년 9월 3일 02시 57분


정부-한은-무디스 “위기 과장… 환란때와 달라”

잠재적 불안요인 신속 대처로 ‘說확산’ 막아야

《곳곳에서 9월 경제위기설이 번지고 있다. ‘카더라’ 식 소문에서 시작된 위기설은 이제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 수준을 넘어 괴담으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 경기 침체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한국 경제가 위기설에까지 휘말리며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는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같은 심각한 위기가 금융시장에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진단하지만 ‘위기설 확산’ 현상은 매우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당국은 실체가 있는 지표악화보다 논리는 취약하지만 확산세를 보이는 위기설에 먼저 맞서 싸워야 하는 형국이다.》

위기설은 9월에 집중적인 채권 만기 도래에 따라 투자자금을 한꺼번에 회수할 경우 빚어질 유동성 위기에서 시작됐다.

위기설 진화에 나선 정부가 2일 정부과천청사 기자실 브리핑(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에서 “9월 국고채 상환자금이 이미 확보돼 있어 상환자금 마련을 위한 국고채 발행 증가는 불필요하다”는 말부터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9월 만기 도래 국고채 규모는 약 19조 원이며 이 가운데 외국인 보유 규모는 7조 원(약 67억 달러) 수준으로 현재 자금만으로도 상환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2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정책포럼에 참석해 “(9월 위기설은) 큰 의미가 없고 증폭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최근 환율 및 주가 변동과 관련해 “환율 상승 압력이 당분간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우리 경제가 파탄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위기설에 대한 반박의 목소리는 외국 금융기관에서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의 토머스 번 부사장은 “한국이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를 다시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일 보도했다. 그는 한국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에 대해서도 “안정적”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영국의 금융그룹인 HSBC도 한국의 ‘9월 위기설’에 기름을 부은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보도가 과장된 것이라는 반박 자료를 내놓았다. 더타임스는 최근 ‘한국 경제가 검은 9월로 향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실 9월 위기설은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쇠고기 괴담 수준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배경도 있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34원을 넘어서고 코스피지수는 1,400 선까지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도 연말까지 1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여기에 정부의 미숙한 대응도 위기설 확산에 한몫했다. 올해 7월 환율 방어를 한다면서 10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부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더군다나 정책방향을 고환율 정책에서 물가안정을 위해 환율급등을 막는 정책으로 갑자기 180도 돌린 일도 금융시장에서 정부가 신뢰를 잃는 계기가 됐다. 최근 현 정부의 ‘경제 리더십’ 실종과 혼란스러운 사회분위기도 경제위기설의 한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의 외환위기 같은 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다는 것이 정설. 외환위기 직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강봉균(민주당) 의원은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당시엔 사실상 고정환율제로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았다 △당시 경상적자가 4년 이상 계속됐지만 금년에 처음 적자다 △현재 외환보유액이 2400억 달러를 넘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기업이 부도설에 휘말리면 멀쩡한 기업도 부도가 날 수 있듯이 한국 경제도 위기론에 더 휘말리면 상황이 극도로 악화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일부 국내외 매체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위기설에 정부의 신속하고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며 나아가 우리 경제의 취약한 부분이 위기설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잠재적 불안 요인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환율 또 18원 치솟아 1달러 1134원…코스피 장중 1400 붕괴

원-달러 환율이 3거래일 연속 급등하면서 1130원대로 치솟고, 코스피지수가 장중 한때 1,400 선 아래로 내려가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8원 오른 1134.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외환당국 개입에 대한 경계감과 전날 폭등에 따른 숨고르기로 오전까지는 조정을 보이는 듯했지만 외국인의 주식 매도세가 강화되고 수입업체의 결제 수요가 몰려 달러 매입 주문이 폭주하면서 환율이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 급등에다 물가 상승 우려가 확산되면서 채권 금리도 덩달아 올랐다. 2일 한국증권업협회에 따르면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8%포인트 오른 연 6.05%로 마감했다.

이날 서울 증시에서 코스피는 전날보다 7.29포인트(0.52%) 내린 1,407.14에 마감돼 연중 최저치를 하루 만에 경신했다. 코스피는 상승세로 출발했지만 오후 들어 개인과 외국인 매도세로 1,392.55까지 떨어져 한때 1,400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장 막판에 프로그램 매수세가 대거 유입되면서 가까스로 1,400 선을 지켰다.

코스닥지수도 전날보다 21.07포인트(4.80%) 급락한 418.14에 마감돼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면서 2005년 1월 12일(414.63) 이후 3년 7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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