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그룹 관계자는 "금호가 대우건설을 다른 회사에 재매각한다거나 심지어 검찰에서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우리 회사를 내사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며 "기업설명회(IR) 등을 통해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이 같은 악성루머를 퍼뜨리는 세력이 대우건설 주식을 공(空)매도한 단기투자자들이라고 의심했다. 해당 기업의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공매도 세력들이 일부러 흉한 소문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당국에 의뢰해 본 결과 루머의 진원지가 홍콩 등 해외인 것으로 추정됐다는 답변이 왔다"며 "하지만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니라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기업들, "공매도에 주가폭락"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대차거래)서 시장에 파는 투자기법. 예상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그만큼 싼값에 시장에서 매입해 되갚아 이익을 챙기고 주가가 오르면 손해를 본다.
이론적으로는 공매도는 시장의 유동성을 풍부하게 해주고 증시 과열기에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증시가 불안할 때는 부작용도 크다. 불법적인 공매도 세력은 악성루머를 퍼트려 해당 기업의 주가를 떨어트린다. 악성루머로 주가가 충분히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이들은 다시 싼값에 주식을 사들여 주식을 갚는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선의의 개인투자자들. 또 해당 기업도 이미지나 정상적인 기업 경영 활동도 망가진다.
하이닉스도 최근 증시불안기에 악성 루머의 공격을 받았다. 이 회사의 주가는 6월 한때 3만 원을 넘었지만 9월 1일 1만7200원까지 주저앉았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전환사채(CB)를 발행한다는 소식에 맞춰 회사가 자금난에 봉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공매도를 쳐 놓고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LG전자도 9월 첫날 휴대전화 부문의 8월 영업이익률이 8%까지 떨어졌다는 루머가 증권가에 퍼지면서 당일 주가가 10% 가까이 급락했다. 회사 측은 "이익률이 두 자리 수는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주가는 이미 한참 짓밟힌 다음이었다.
●약세장에 민감한 투자자들 자극
최근 '9월 위기설' 등으로 투자자들이 잔뜩 민감해진 시기에 이런 개별 기업의 유동성 위기설은 자본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실제로 개인 투자자들은 루머에 대한 사실 확인도 되기 전에 이들 기업의 주식을 투매하다시피 하고 있다. 한 대기업의 IR 담당자는 "요즘에는 '유동성'이란 세 글자만 나와도 바로 '아웃'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과거엔 보통 허위 정보가 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주가조작 세력은 "어느 기업을 인수한다더라" 또는 "신약·신제품을 개발한다"는 소문이 뜨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고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시세차익을 챙겼다. 지금은 반대다. 같은 거짓소문이라도 악소문은 만들어내기가 훨씬 쉽고 전파 속도도 빠르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렸던 K사 관계자는 "기업 부도설의 경우 여의도 증권가에서 자주 쓰는 인터넷 메신저나 정보지 등을 타고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간다"며 "그러면 불과 몇 분 뒤에 '너의 회사에 무슨 문제 있냐'는 전화가 줄을 잇는다"고 말했다.
●당국, 집중단속 나서
피해 기업이 늘어나자 금융감독원은 3일 특정 기업에 대한 음해성 루머를 유포하는 행위를 적발하는 '시장 악성루머 합동 단속반'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공매도 세력의 90%가 외국인 투자자들이고 10%가 국내 기관투자자들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4억5000만 주였던 대차거래 잔고는 이달 초 8억600만 주로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공교롭게도 최근 주가급락의 아픔을 겪은 하이닉스, LG전자, 대우건설의 잔고가 유독 많이 늘었다.
공매도는 해외에서도 문제다. 미국 정부는 7월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등 최근 주가가 폭락한 일부 금융회사에 대한 허위 정보가 유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10여 개 금융기관의 주식에 대해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하기도 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