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기외채 절반이 외국계 은행 몫… 큰 문제 아니다”

  • 입력 2008년 9월 4일 02시 53분


■ 주요 외국 투자은행들이 보는 ‘9월 위기설’

“외국인 투자자 자산 매각은 글로벌 금융위기 따른 현상

수출업체 환헤지로 외채 늘어나… 대금 받으면 해소될것

9월 만기 외국인 채권은 전체의 14% 불과해 별 영향 못줘”

“한국에서 제기된 ‘9월 위기설’은 근거 없는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2008년 외국인투자가들의 한국 자산 매각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리스크 회피’ 현상에 따른 것이다.”

글로벌 금융계를 주무르는 월가 투자은행들이 최근 한국 관련 보고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들 투자은행들은 보고서에서 “외채 증가의 ‘실제 명세’와 거시경제 상황 등을 종합해 보면 한국 일각에서 확산되는 9월 위기설은 근거가 미약하고 과장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월가 투자은행들이 작성하는 보고서는 투자 결정 시 가이드라인이 될 뿐 아니라 거래 고객들에게 배포돼 투자와 관련한 의사결정 시 큰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전 세계 자금 흐름을 좌우하는 투자은행 보고서들이 9월 위기설을 근거 없는 시나리오로 일축했다는 점은 ‘9월 위기설’이 한국 내부에 국한된 논란으로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 ‘단기외채, 큰 문제 아니다’

위기설 확산의 근거 중 하나였던 단기외채 증가와 관련해 월가 투자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고 분석했다.

리먼브러더스는 한국의 단기외채에서 외국계 은행 한국지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단기외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외국계 은행들이 이 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이 비중은 30%에도 미치지 않았다.

한국 기업이나 은행들이 갚아야 할 외채 부담이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단기외채 증가의 원인도 조선업체를 포함한 한국의 수출업체들과 해외 펀드 투자를 늘린 자산운용사들이 공격적으로 헤지(위험회피) 거래에 나서면서 증가한 것이므로 문제 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조선업체 등이 원화 가치 상승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해 미래에 받을 달러를 은행에 미리 매도했고 이 과정에서 단기외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배가 인도되고 조선업체의 수주 대금 등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외채라는 것.

위기설의 ‘뇌관’ 역할을 했던 9월 만기 국고채에 대해서도 문제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씨티은행은 9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국인 보유 채권 금액 67억 달러는 한국에서 ‘의미 있는 문제’를 야기할 만큼 큰 규모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67억 달러는 외국인투자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총 원화표시 채권 금액의 1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씨티은행은 또 올해 2분기(4∼6월)에 외채 증가 추이가 둔화된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외채는 1분기(1∼3월)에 316억 달러 증가했지만 2분기에는 60억 달러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 ‘은행과 기업 부문 건전성 높다’

투자은행들은 한국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또 다른 근거로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은행과 기업 부문의 건전성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점을 제시했다.

당시에는 기업들의 부도가 이어지고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급증하면서 외국계 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크레디트 라인(신용공여한도)을 끊으면서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지금은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과 기업의 부채비율도 낮다는 것이다.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는 ‘한국, 1997년 vs 현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기업의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1997년에는 218%였지만 현재 추정치는 10분의 1 수준인 18%”라고 말했다.

CS는 “한국은 1996, 1997년에는 단기외채가 전체 외환보유액보다 400억 달러 많았지만, 지금은 외환보유액이 단기외채보다 720억 달러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 투자은행은 또 외국인들이 주식과 채권을 매도하는 자본 유출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리스크 회피’ 현상에 따른 것으로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리먼브러더스는 “글로벌 금융 불안이 한국의 은행 부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한국의 은행 부문은 대체로 건전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단기외채 증가 추이에 비해 외환보유액이 적다’는 위기설의 근거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단기외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과 외환보유액으로 (패니메이, 프레디맥 등이 발행해 부실 가능성이 높은) 미국 채권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외환보유액 규모가 부족하지 않으냐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 같은 우려가 과장됐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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