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위기설은 ‘괴담’수준 정부도 대증요법 벗어나야”

  • 입력 2008년 9월 4일 02시 53분


■ 민간 경제브레인 7명 긴급 설문조사

“대외악재에 자금경색 겹쳐 위기설 증폭

경상수지 흑자 돌아서면 사정 좋아질 것

정부, 시장안정 의지-정책 일관성 보여야”

정부의 적극적인 해명과 강한 부인에도 한국 경제에 드리운 ‘9월 위기설’의 그림자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9월 위기설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지, 위기설이 나온 원인은 무엇인지, 이를 해소하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 경제연구소 소장과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등 7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현실화 가능성 ‘낮거나 전무(全無)’

경제연구소장들과 리서치센터장들은 하나같이 ‘9월 위기설’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평가했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 지금은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며, 전체적으로 볼 때 외환위기로 갈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뜯어보면 분야별로 위기라고 볼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일시적 과잉 반응이고 패닉일 뿐”이라며 “외화 유동성 부족으로 생길 국가적 위기의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도 “과도한 가정에 의한 괴담(怪談)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상대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보인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모든 위험요인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9월 위기설은 가능성이 높지 않다”면서 “향후 경기 예측이 다소 부정적이라는 걸 확대해석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황상연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국채는 안전하고 수익률이 높아 외국인들이 높은 수익을 포기하고 일시에 돈을 빼 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위기설이 해소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김주현 원장은 “9, 10일 (외국인 보유 국공채) 만기일이 지나고 추석 연휴가 끝나면 위기설은 잠잠해질 것이며 원-달러 환율도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종석 원장은 “최근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경상수지가 균형이나 흑자로 돌아서면 (달러) 자금의 이탈은 해소되고 위기설도 소멸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내외 악재 겹쳐 위기설 생성”

이번 위기설은 대외 악재와 한국 경제의 내부적 불안요인이 겹치면서 증폭됐다는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부적으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신용경색을 겪었기 때문이며, 내부적으로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에 자금이 묶인 상태에서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악화되는 등 금융권과 기업의 자금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황상연 센터장도 “상반기(1∼6월)부터 은행권을 중심으로 자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9월의 국고채 만기 도래가 겹쳐 위기설이 증폭됐다”고 설명했다.

김주형 원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기업들의 어려움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했다.

정구현 소장은 직접적 원인으로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꼽았다.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한국이 10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되자 위기감이 고조됐고,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좋은 한국 시장에서 외국인들이 주식 등 자산을 팔고 나가면서 문제가 커졌다는 것. 김주현 원장은 “세계 증시가 나쁜 상황에서 잘 버티던 한국 주식시장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등의 충격이 조금 늦게 반영되면서 외환시장 불안과 겹쳐 ‘패닉’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신뢰 회복이 해법

이들 경제전문가는 위기설을 극복하려면 정부와 한국은행이 시장과 국민으로부터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건이 내놓는 ‘대증요법’에서 벗어나 신중하고 단호한 조치로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

한은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특히 높았다. 김주형 원장은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때에는 어떤 경우에도 중앙은행이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유지할 것이라는 확고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주 센터장도 “단기적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해 은행들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정부가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면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종석 원장은 “최근 정부가 내놓은 감세정책 등을 제대로 추진해 경기 회복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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