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우리집 보일러 맘대로 켠다면…

  • 입력 2008년 9월 4일 02시 53분


홈네트워크 시장 키우기 급급 보안은 뒷전

원격제어 해킹 범죄악용땐 큰 피해 우려

누군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집 가스밸브나 보일러를 작동시킨다면 생각지 못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또 나의 건강 상태나 출퇴근 시간 등 기본적인 정보가 새어 나간다면 흉악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

‘집 안 구석구석까지 원격으로’라는 기치를 내건 홈 네트워크 산업이 사이버 공격에 따라 가정 내 위험 요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홈 네트워크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데 비해 보안 인프라 구축은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유무선 네트워크가 혼재돼 있는 홈 네트워크는 기존 인터넷보다 더욱 견고한 보안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3일 홈네트워크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홈 네트워크 시장 규모는 2조1945억 원으로 2006년 2조644억 원보다 6.3% 늘어났다.

작년 말 기준으로 국내 전체 1700만 가구의 22.9%인 389만 가구가 홈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있다.

홈 네트워크는 가구 내 여러 대의 PC 및 컴퓨터 관련 장비 간 정보 네트워크, 가전제품 제어를 위한 자동화 네트워크, 음향·영상기기나 게임기 등의 오락문화생활에 이용되는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크 등 3가지로 나뉜다.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산업의 2020 비전과 전략’ 보고서에서 국내 홈 네트워크 시장이 2005년 9억5000만 달러(약 1조355억 원)에서 △2010년 20억1000만 달러 △2015년 38억4000만 달러 △2020년 73억3000만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홈 네트워크에서 개인 정보 누출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보안 시스템 설치는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 관계자는 “집 바깥에서 이뤄지는 개인 인증 시스템은 많이 보급되고 있지만 집 안에 별도의 보안 시스템을 설치하는 경우는 극히 적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는 홈 네트워크 업체들이 ‘선(先) 시장 활성화’를 내세우면서 시장이 커진 뒤 보안을 강화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희국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업체들은 보안사고로 인한 문제점을 잘 알면서도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시스템 구축을 꺼리고 있다”며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홈 네트워크 보안 인프라 결여는 곧바로 가정 내 위험으로 직결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누출된 개인 정보는 현재는 금융 피해 등을 야기하는 데 그치지만 이 정보를 갖고 홈 네트워크 시스템에 침입할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스밸브 잠금장치, 보일러 등이 작동해 한순간에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융합서비스보안연구팀도 ‘전자통신동향분석’ 8월호에서 “홈 네트워크의 정보 가전기기들은 상대적으로 컴퓨팅 능력이 낮아 강력한 보안기능 탑재가 어려워 사이버공격의 타깃이 될 수 있다”며 “또한 헬스케어 서비스처럼 생명과 직결된 바이탈 신호들의 사용이 증가하면 주요 생체정보의 노출이나 위·변조를 통한 공격도 가능해진다”고 우려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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