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조선업체 선박건조 ‘빨간불’

  • 입력 2008년 9월 4일 19시 50분


국내 일부 중소 조선업체들이 시설 투자자금 부족으로 선박 건조에 차질을 빚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향후 조선시황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금 회수가 여의치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들 기업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산업계 일각에서 제기된 중소 조선업계 과잉투자 후유증이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전남 목포시에 조선소를 두고 있는 C&중공업은 벌크선 60여 척을 3조 원에 수주했지만 금융권으로부터 시설 투자에 필요한 1700억 원을 조달하지 못해 생산 설비 확충과 선박 건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목포상공회의소가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게 금융기관의 시설 자금 융자를 위한 건의서까지 제출했지만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C&중공업은 최근 임원들이 시설 자금으로 써달라며 일제히 월급까지 반납하는 등 비상상황에 들어갔다.

전남 해남군에 231만㎡(약 70만 평) 규모의 조선소를 둔 대한조선도 수주 물량 소화를 위해 제 2도크 건설을 추진 중이지만 자금사정 때문에 공사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김호충 대한조선 사장은 최근 외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제 2도크를 올해 말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해외 자본 유치가 늦어져 내년 6월 말 정도에 완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조선은 현재 벌크선 43척(수주액 3조3000억 원 규모)을 수주해 놓은 상태지만 제 2도크 건설이 늦어지면 납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조선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조선업계가 1970년대 이후 지켜온 '납기 준수 신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세계 조선 시장에서 한국은 신용이 가장 높다. 1970년대 이후 선박 인도 일자를 못 맞춘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국 업체보다 비싼 값을 주더라도 한국 업체에게 선박을 맡기려고 하는 해운회사들이 많다.

하지만 자금난을 겪고 있는 국내 중소업체 때문에 이런 전통이 깨지면 '한국 조선'에 대한 국제 신인도가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조선협회 관계자는 "중소 조선업체들은 최근 몇 년간 조선 경기가 호황을 누리자 선박 건조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도 않은 채 선박을 수주한 경우가 많아 '시한폭탄'이라는 얘기가 많았다"며 "중소업체들이 무너지면 선박블록업체 등 협력 업체도 연쇄 도산이 불가피해 지역 경제에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소 조선업계는 수주한 물량이 많은 만큼 일시적인 자금난만 해소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돈을 받을 곳이 있는 상황에서 자금 흐름에 일시적인 병목 현상 때문에 기업이 도산하면 국가적으로 손해라는 얘기다.

C&중공업 관계자는 "지금의 위기 상황은 과잉 투자로 인한 게 아니며 자금 조달이 되지 않아 밀린 수주량을 처리하지 못해 빚어진 것"이라며 "중소 조선소들이 어려워지면 지역 경제에다 막대한 타격을 주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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