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4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집 전화번호를 그대로 인터넷전화에 쓸 수 있는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제’를 10월에 도입한다고 밝히면서 유선전화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반면에 인터넷전화업계는 적극적인 ‘파이’ 확대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업무보고에 포함된 ‘와이브로’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이동통신업계는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이다.
○ 유선전화 시장, 태풍 속으로
“이제 성문이 열렸다.” 한 인터넷전화업체 관계자는 번호이동제 도입의 파괴력을 이처럼 비유했다.
그동안 인터넷전화 확대를 막아온 ‘전화번호 변경’ 장벽이 사라지면, 기존 전화로는 인터넷전화의 싼 요금을 따라올 수 없기 때문. 인터넷전화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기존 전화시장의 90%(2019만 대)를 지배해 온 KT는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KT 측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기존 전화가입자의 이탈을 줄이고, 그동안 소홀했던 인터넷전화 분야에서 좀 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인터넷전화업체들은 희색이 만면하다. 지난해 6월 이 사업에 본격 뛰어든 LG데이콤은 현재 가입자 90만 명이 올해 말에는 140만 명으로 수직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영업을 시작한 하나로텔레콤도 연말까지 3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김홍식 하나로텔레콤 홍보팀장은 “10년가량 유선전화 시장에서 분투했지만 시장점유율은 겨우 9%대”라며 “이제야말로 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 무선통신업계 “글쎄요”
휴대인터넷 와이브로에 음성통화용 번호를 부여하고, 신규 사업자를 선정해 ‘황금주파수’인 700∼800MHz 대역을 제공하겠다는 방통위의 육성정책 효과에 대해 KT, SK텔레콤 등 주요 통신업체들은 대체로 ‘글쎄요’라는 반응이다.
통신업체들이 와이브로로 음성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전국망 구축에 2조∼3조 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한 데다 기존 시장과 겹친다고 보기 때문.
따라서 직접, 또는 자회사를 통해 이동통신 사업을 벌이고 있는 KT와 SK텔레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두 회사는 2005년 와이브로 사업권을 받았지만 아직 수도권과 일부 주요 도시에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가입자도 각각 19만 명, 3000명에 그치고 있다.
요금인하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자가 늘어나면 요금이 내려간다는 논리를 내놓았지만 신규 진입업체는 당분간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방통위 방침은 매출 감소를 유발하는 요금 인하와 비용이 늘어나는 투자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라며 “추가 투자 없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가상이동망사업자(MVNO·일종의 이동통신 소매사업)를 허용하는 등 틈새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한다는 기존 정책과도 잘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헌진 기자 mungchii@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