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팔리는 선물세트도 1만원대 생활용품 대세
서울 구로구의 한 전자부품 제조업체는 최근 롯데마트 구로점에서 직원 추석 선물용으로 1만 원대의 생활용품 세트 200여 상자를 구입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추석에는 3만 원 정도의 햄 선물세트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구로구에는 중소 제조업체가 많아 이 지역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명절 때마다 기업 판매로 ‘재미’를 봐 왔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롯데마트 구로점 박성민 영업총괄담당은 “올해는 기업들이 싼 선물세트를 찾는 추세가 뚜렷하다”며 “1만 원대의 생활용품 선물세트가 가장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 “사는 사람은 느는데 매출은 줄어”
추석 대목을 앞둔 유통업계가 속을 앓고 있다. 명절 대목 덕을 톡톡히 보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많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다는 게 대형마트와 백화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추석 선물세트가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1일부터 9일까지 강북의 한 대형마트 지점에서는 7만 명의 고객이 물건을 샀다.
지난해 같은 기간(추석 연휴 시작 12일 전∼4일 전) 구입고객 수는 6만6000명이다. 올해 6% 정도 고객이 는 셈이다.
하지만 이 기간 매출은 오히려 2%가 줄었다. 이 대형마트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선물세트를 고르더라도 값싼 물건 위주로 하기 때문에 판매량은 늘어도 매출은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추석을 앞둔 이마트의 전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3.7% 줄었고, 롯데마트도 3.0% 정도 감소했다.
○ 생활용품 선물 늘어…1970년대로 회귀?
1∼9일 신세계 이마트에서 가장 매출이 많았던 선물세트는 LG생활건강의 ‘초충도 1호’다. 샴푸, 비누, 치약 등으로 구성된 이 제품의 가격은 9900원. 매출 2위인 아모레퍼시픽의 생활용품 세트 ‘까치 1호’도 9900원짜리다. 이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선물세트 10개 가운데 8개 품목이 생활용품이나 가공식품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매출 상위 10개 가운데 6개가 정육이나 과일세트였다. 베스트셀러 1, 2위는 3만1800원(지난해 가격 기준)짜리 ‘신고 VIP 2호’와 2만6800원짜리 ‘신고 골드 2호’였다. 롯데마트 역시 올해 매출 상위 10개 선물세트 가운데 7개가 생활용품 또는 가공식품 세트였다.
신세계 유통연구소에 따르면 생활용품이 주요 명절 선물로 유행했던 때는 1970년대다. 신세계 홍보팀 박수범 과장은 “올해 생활용품이 많이 팔린 것은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라 가격이 싸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 백화점 상품권 매출도 지지부진
백화점의 매출 신장률도 기대에 못 미친다. 현대백화점은 추석 선물세트를 진열한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9일까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추석 연휴 시작 14일 전∼4일 전)보다 6% 늘어났다고 밝혔다. 지난해 추석 시즌 매출 신장률은 16%였다. 이 백화점의 상품권 판매 신장률은 3%로 지난해 추석 매출 신장률 21%에 크게 못 미친다.
이처럼 사정은 어렵지만 유통업계는 ‘연휴가 짧으면 선물 구입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이헌상 생식품팀장은 “과거 사례로 볼 때 소비자들이 명절 연휴가 길면 미리 선물을 사고 여행 준비에 나서지만 연휴가 짧으면 명절 직전까지 선물 구입을 늦춘다”며 “올해도 추석 직전에 매출이 크게 늘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