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위기설, 외국인 배만 불렸다

  • 입력 2008년 9월 11일 19시 31분


'9월 위기설' 이 기승을 부리던 이달 초순(1~10일) 외국인은 국내 상장 채권을 2조 원 어치 이상 순매수했다. 불과 열흘 동안에 지난 달 전체 순매수 규모(1조 5400억 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위기설의 내용은 "외국인이 채권을 대량으로 팔아 떠난다"는 것인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외국인은 한국 채권을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사들인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한국 경제에 대한 외부의 시각이 갑자기 긍정적으로 변하기라도 한 걸까.

전문가들은 "그보다는 외국인들이 채권투자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예전보다 커진 데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익이 커진 것은 다름 아닌 '위기설' 때문이었다.

●위기설로 외국인의 원화조달 쉬워져

외국인이 한국 채권을 사려면 우선 원화를 확보해야 한다. 원화를 직접 외환시장에서 구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환 위험이 생긴다. 원화로 한국 채권을 사놨는데 만기 시점에 환율이 더 상승(원화가치는 하락)하면 고스란히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통상 국내 은행들과 직접 외환거래를 한다. 외국인이 은행에 달러를 빌려주면 은행은 외국인에게 낮은 금리로 원화 대출을 해주는 형식이다. 이 때 양측은 대출 만기시 원금을 그대로 상환하는 계약을 맺기 때문에 그 사이 환율이 바뀌어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금융불안 속에서 위기설까지 터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세계적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생기면서 은행들이 달러를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 해외에서 점점 달러 조달이 힘들어진 국내 은행들은 한국 채권을 사려는 외국인들에게 달러를 수혈 받는 대신 훨씬 싼 금리로 원화 대출을 해줬다. 외국인은 싼 금리로 대출을 받아 높은 금리를 주는 채권을 사니 그에 따른 차익도 챙기고 환 위험도 피해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처럼 외국인이 달러를 빌려주는 대신 원화를 빌리며(통화스왑·CRS) 지불하는 금리는 7월14일 연 4.35%에서 9월2일 3.42%까지 내려갔다. 이와 함께 외국인의 무위험 거래 차익(원화대출 금리와 국고채 금리의 차이)도 7월 약 1.5%포인트에서 9월초 2.5%포인트까지 커졌다.

금감원 도보은 시장분석팀장은 "한국경제 위기설은 한국 금융기관이나 채권에 대한 투자 리스크(위험)를 올려놓았다"며 "결국 위기설이 위기를 조장해 외국인이 채권을 더 사들인 꼴이 됐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채권 매수의 또 다른 이유는 채권금리의 상승이다. 위기설로 인해 국가신인도가 떨어졌고 채권 값도 하락한 것이다. 한국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채권 지표금리인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8월 1일 연 5.76%였지만 위기설이 한참 증폭됐던 9월2일에는 6.05%까지 올랐다. 이번 위기설은 '외국인이 채권을 팔아 채권값이 폭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만큼 이는 '위기설이 위기를 부른' 측면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위기설 지나갔다고 자만하면 안 돼"

위기설이 흘러간 지금 금융계에서는 재미있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위기설은 외국인이 유포했다"는 음모론. 외국인들이 차익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가능성 없는 괴담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이다. 실제 영국의 유력일간지인 '더 타임즈'지는 최근 "한국이 검은 9월로 가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한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이런 음모론을 더 증폭시켰다.

또 "위기설이 위기를 막았다"는 다소 엉뚱한 주장도 있다. 위기설이 없었다면 외국인의 투자 이익이 줄었을 것이고 결국 채권도 상당부분 팔아치웠을 것이라는 논리다.

현대증권 신동준 채권분석팀장은 "분명한 것은 외국인들이 갑자기 한국 경제에 대한 믿음이 커져서 채권을 사들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이 이번 위기설이 현실화되지 않은 것을 근거로 지금의 경제 상황을 자만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11일 기획재정부는 조기상환 등의 방법으로 국고채 만기 분산을 원활히 하고, 연말에 초과세수가 발생하면 남은 돈으로 앞서 발행한 국채를 갚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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