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펀드에 연초 1억원 넣었다면 3676만원 날아가

  • 입력 2008년 9월 13일 01시 54분


■ ‘상투’ 잡았던 국내 투자자들 ‘불면의 밤’

반찬값아껴 모은 돈 결혼자금-은행대출 주식형펀드에 ‘몰빵’

“벌써 반토막 났는데 얼마나 더 떨어질지” 잠 설치고 우울증도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서 천덕꾸러기로.’

지난해 11월 1일 이전 1년간 중국 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38.11%. 1년 만에 투자원금이 2.4배로 늘어나는 고수익 상품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중국 증시가 추락하면서 수익률이 급락했고 고점(高點)이던 지난해 10, 11월의 중국 주식형펀드에 가입한 사람들은 큰 금전적 피해와 정신적인 상실감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다.

○ 속타는 투자자들 하소연 줄이어

회사원 윤모(29·여) 씨는 중국 펀드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 지난해 10월 은행 직원의 권유로 중국 펀드에 넣었던 결혼자금 2000만 원이 현재는 1200만 원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윤 씨는 “내년에 치를 결혼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올해 들어 11일까지 중국 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36.76%. 연초에 1억 원을 넣었다면 3676만 원이 날아간 셈이다. 미래에셋차이나인프라섹터주식형자(CLASS-C) 등 일부 펀드는 수익률이 ―50%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해외 펀드 열풍을 일으켰던 ‘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의 수익률도 올해 들어 ―33.12∼―32.99% 수준이다. 이 펀드는 최근 한 달간 2254억 원의 손실을 냈고 투자자들은 519억 원의 자금을 순유출(유출액에서 유입액을 뺀 것)했다.

최근 투자 관련 커뮤니티인 ‘모네타’에는 손실 난 중국 펀드 때문에 속 타는 투자자들의 글이 줄을 잇는다.

ID ‘성실한릴라’는 “적금 들자는 아내를 설득해 적립식으로 투자했는데 수익률이 ―40%라니 아내 앞에서 얼굴도 못 들겠다”고 말했다. ‘신데렐라’는 “콩나물 값 아껴 모은 돈 200만 원이 10개월 만에 사라졌다”며 “어느 시점에 부분 환매를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 “투자의 기본 원칙 되새겨야”

한국증권연구원 김재칠 연구위원은 “시장 상황이 좋다고 변동성이 큰 중국 증시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을 무더기로 만들어 낸 금융회사들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고, 반성이 필요하다”며 “투자자들도 고수익에 현혹돼 분산 투자라는 기본 투자 원칙을 어겼을 때 어떤 피해가 올 수 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품을 만들어 낸 자산운용사뿐 아니라 펀드 팔기에 급급했던 은행 등 판매사, 불완전 판매에 대한 감시가 부족했던 금융당국 모두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재룡 한국펀드연구소장의 지적이다. 그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펀드 시장은 컨설팅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판매구조여서 ‘투자의 쏠림 현상’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임원도 “외국계 회사의 경우는 현재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고객한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한테 지금 시점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상품을 내놓는다. 고객이 거기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고객을 교육하고, 장기적으로 고객에게 유리한 상품을 만들고 출시한다. 그런데 한국의 자산운용사들은 그런 부분이 약하다. 시장이 급격히 과열될 때 시류에 편승하는 상품이 많이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펀드 전문가들의 조언

떨어진 수익률 때문에 가슴앓이를 해온 중국 펀드 투자자들에게 최근 중국 증시의 추가 하락은 심각한 고민거리다. 이미 큰 손실을 봤다면 중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믿고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는 게 많은 펀드 전문가의 조언이다. 하지만 2년 이상 참아내기 힘든 사정이 있거나, 아직 큰 손해를 보지 않은 상태라면 주가가 조금이라도 오를 때 펀드를 일부 환매해 중국에 대한 투자비중을 줄이는 게 낫다.

○ 마이너스 수익률 내고 있다면

전문가들은 지난해 8월 이후 고점 주변에서 중국 펀드에 가입해 현재 30∼40%대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고 있다면 손실이 큰 만큼 충분히 반등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국내 중국 펀드의 주요 투자대상인 홍콩H증시가 이미 많이 떨어져 큰 폭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줄어든 만큼 손해를 보며 환매하기보다 내년 상반기(1∼6월) 정도까지는 가지고 있으면서 수익률 회복을 노리는 전략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김태훈 연구원은 “중국 증시는 지난해 급등한 만큼 조정 과정을 피할 수 없다”면서 “급하게 돈이 필요하지 않은 투자자라면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년 이상 장기 보유할 여력이 없는 투자자라면 조금씩 주가가 오를 때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부를 환매해 다른 투자처를 찾는 게 낫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대신증권 김순영 연구원은 “현재 10,000 정도인 홍콩H증시가 11,000∼12,000으로 오를 때 일부를 환매해 현금화하거나 유망한 다른 자산으로 갈아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 누적 수익률 아직 플러스라면

지난해 7월 이전에 투자해 누적 수익률이 아직 플러스인 투자자라면 주가가 반등할 때 일부를 환매하는 게 유리하다는 조언이 많았다. 우리투자증권 조한조 연구원은 “거치식으로 중국 펀드에 넣었는데 지금까지 누적수익률이 플러스라면 일부 환매해 브릭스 펀드로 갈아타거나, 채권 등에 투자해 자산 간 분산투자 효과를 높이라”고 조언했다.

중국 한 곳에 투자하는 펀드의 비중을 줄이고 여러 지역에 골고루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낼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라는 지적이다. 브릭스 펀드에도 중국이 포함돼 있지만 자원수입국(중국 인도)과 자원수출국(러시아 브라질)에 동시에 투자할 수 있어 원자재 가격 변화에 따른 특정국의 주가 변화에 덜 민감하다는 설명이다.

○신규 투자자…“적립식이라면 투자해 볼 만”

지금 같은 상황이 신규 투자자들에게는 유리한 시점일 수도 있다. 워낙 주가가 많이 빠진 상태여서 홍콩H증시는 물론이고 중국 본토의 A증시에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얼마나 더 떨어질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투자하기보다 연말까지 시장 상황을 주시하며 적절한 때를 노리라는 조언이다.

김태훈 연구원은 “바닥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불안요인이지만 신규 투자자라면 연말쯤에는 부담 없이 낮은 가격에 분할 매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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