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계도 ‘리먼 후폭풍’…유동성 확보 비상

  • 입력 2008년 9월 19일 02시 55분


《국내 금융회사가 리먼브러더스나 메릴린치 등 최근 몰락한 투자은행(IB)에 직접 투자해 손실을 본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각국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글로벌 경제상황에서 국제 금융시장의 경색은 한국의 금융계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18일 증시에서 일부 금융주는 가격제한폭까지 내려갔다. 국내 금융기관끼리의 하루짜리 초단기 외화차입(오버나이트) 금리는 이날 9%까지 치솟았다. 일주일 전만 해도 2.2∼2.5% 수준이던 금리가 일주일 새 5배로 폭등한 것이다. 국내 은행의 달러 사정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경고처럼 “다음은 글로벌 실물위기”라면 국내 금융기관에 줄 악영향은 지금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 우려가 크다. 가계 빚은 점점 불어나고 있다. 》

○ 미국 금융불안에 금융주 일제히 폭락

18일 국내 증시에서 은행(―5.63%) 증권(―2.13%) 보험(―4.17%) 등 금융업종 지수는 5.70%의 폭락세를 보이며 이날 코스피지수의 하락을 주도했다.

하나금융지주의 주가는 전날보다 ―13.95% 빠졌고 우리금융지주도 ―9.81% 내렸다. 증권주도 동양종금증권(―6.47%) 대우증권(―5.10%) 등의 하락폭이 컸고 보험주는 메리츠화재(―7.18%) 동부화재(―7.42%) 그린손해보험(―7.19%) 등이 전날 대비 7%가 넘는 하락률을 보였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들이 리먼브러더스가 발행한 채권 및 파생상품 등에 투자한 금액은 7억2000만 달러로 많은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영국 러시아 등 세계 각지로 퍼져나갈 조짐을 보인다. 전 세계 금융자산의 가치가 동반 하락하고 있어 국내 금융주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또 글로벌 신용경색이 심해지면서 국내 은행들의 달러 조달이 어려워진 것도 한국 금융기관에는 부담이 되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월가의 위기에서 촉발된 세계적인 ‘유동성 확보 전쟁’에 휘말리게 된 것.

굿모닝신한증권 홍진표 팀장은 “금융회사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돈이 잘 돌아야 하는데, 금융기관들의 자금 조달이 어렵다 보니 대출영업 등에 차질이 생기게 될 우려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 가계 빚, PF 대출이 ‘뇌관’

그러지 않아도 국내 금융권의 리스크 목록은 산적해 있다.

부동산 PF 대출은 국내 금융회사들의 가장 큰 ‘시한폭탄’이다.

저축은행들의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2월 12.4%에서 올해 6월 말에 14.3%까지 치솟았다. 전체 대출에서 PF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24.1%로 일반은행(4.4%)들보다 훨씬 높다. 이에 대해 감독당국은 충당금 적립기준을 강화하는 등 건전성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지방을 중심으로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심해지고 있어 리스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가계 빚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개인 금융부채는 780조7000억 원으로 3월 말보다 3.1% 늘었다. 그중에서도 경기 둔화로 인한 영세 자영업자 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증시와 부동산 침체의 영향으로 금융자산보다 금융부채가 더 가파르게 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소득은 제자리걸음이어서 채무 상환을 못 하는 가계가 속출할 수도 있다는 뜻.

이 밖에 최근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로 손실을 보는 중소기업들이 옵션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은행 수익성 확보에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금융불안으로 외국인 투자가가 증시에서 빠져나가면서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가증권 등 자산가치의 하락도 우려된다”며 “여기에 금융 경색과 실물경기의 추락으로 대출 부실화 등의 현상이 겹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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