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쇼크’로 자금시장 꽁꽁…금융권 ‘돈맥경화’

  • 입력 2008년 9월 20일 02시 59분


《“외환위기 때가 떠올랐습니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한 자금 담당 임원은 미국의 금융위기가 고조된 18일 국내 자금시장의 ‘패닉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1997, 98년 당시를 연상시킬 만큼 돈줄이 꽉 막혔다는 것. 그는 “오전 중에 다행히 자금을 마련했지만 중소형 증권사들은 콜 자금 차입이 꽉 막혀 입이 바짝 타들어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산운용사들이 증권사의 신용 위험을 우려해 콜 자금 공급을 망설이자 일부 증권사가 채권까지 내다 팔며 자금 확보를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대출금리 인상으로 기업-가계 부담 커질듯

금융권이 돈에 목말라하고 있다. 시중에 풀린 돈은 적지 않은데 미국발 금융쇼크로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어서다. 은행권의 ‘돈맥경화’는 특히 증권사와 신용카드사,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으로 번지고 있어 결국 기업과 가계가 돈을 빌리기 힘들어지거나 빌리더라도 이자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 꽁꽁 숨어버린 돈

19일 은행권에 따르면 전날 최고 9%대까지 치솟았던 하루짜리(오버나이트) 외화 금리는 이날 5%대로 떨어졌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각국 중앙은행이 시중 유동성 확보를 위해 공동 대응에 나서면서 해외의 오버나이트 금리가 소폭 내렸기 때문이다.

전날 하루 만에 0.29%포인트가 올라 SK글로벌 사태가 불거졌던 2003년 3월 12일 이후 5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이날 0.09%포인트 내린 5.80%로 거래를 마쳤다. 전날의 패닉 분위기는 진정되는 분위기지만 자금시장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한 달 이상의 기간으로는 달러를 빌리기 어려워졌다.

한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외환시장이나 단기금융시장(머니마켓)에서 달러를 구해야 하는데 돈이 돌지 않고 있다”며 “대부분 달러를 내놔도 며칠이나 몇 주짜리의 단기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원화 자금시장도 바짝 움츠러들었다. 한국은행이 전날 3조5000억 원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해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은행이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증권사들이 자산운용사의 콜 자금을 빌리도록 돕는 상황은 여전하다. 국민은행은 18일 8000억 원, 19일에는 1조2000억 원의 콜 자금을 자산운용사에서 받아서 증권사에 돌리는 중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증권사는 하루 운용자금을 대폭 줄이는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가입자 증가로 하루 입출금이 크게 늘어 단기 차입금 규모가 큰 폭으로 불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자금 담당자는 “금융불안이 지속되면서 하루 6000억∼7000억 원의 콜 자금을 차입하던 것을 최근 3000억 원 규모로 줄였다”며 “단기 자금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콜 자금을 아예 안 쓰는 방안까지 찾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 신용카드사, 대부업체도 ‘돈맥 경화’

삼성카드는 16일 200억 원 규모의 2년 만기 회사채를 7.48%의 금리로 발행했다. 이 회사가 4월 회사채를 발행했을 때의 채권 금리(6.00%)보다 5개월 만에 1.48%포인트가 올랐다. 신한카드도 3년 만기 회사채 금리가 3월 발행 때는 5.72%였으나 6월 6.87%로 올랐고, 8월에는 7.67%로 뛰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금융회사에서 발행하는 회사채의 금리가 전체적으로 크게 올랐다”며 “은행채 금리도 많이 오르다 보니 굳이 카드사나 할부금융사가 발행하는 회사채를 인수하려고 하지 않아 제2금융권에서 특히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한 캐피털사 자금팀장은 “시장 상황이 회사채 발행에 불리해 채권 발행을 포기하고 기존 자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은 예금 금리를 7%대로 올리면서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자금난은 주로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대부업체로도 번지고 있다.

이재선 대부소비자금융협회 사무총장은 “대부업체들은 1∼2%포인트의 가산금리를 주고 겨우 돈을 마련하고 있다”며 “업체별로 대출 승인율을 낮추는 것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러시앤캐시’라는 브랜드로 영업 중인 대부업체 에이앤피파이낸셜 관계자는 “최근 몇 달 새 조달 금리가 0.5∼1.0%포인트 올랐다”며 “보험사에서도 자금 조달을 시도하는 등 자금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자금난이 장기화하면 대출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기업과 가계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최근 한두 달 새 제2금융권에서는 0.5∼1.5%포인트까지 조달금리가 올라갔다”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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