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최근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한 태산엘시디와의 대규모 통화옵션거래로 거액의 손실을 보게 됐다. 최근 금융시장 불안으로 중소기업들의 파생상품 관련 손실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면서 그 여파가 파생상품 계약자인 은행권으로도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금융지주는 19일 공시를 통해 “9월 17일 환율(달러당 1116원)을 기준으로 하면 태산엘시디가 하나은행과의 피봇(PIVOT) 거래로 입은 평가손실은 1388억 원이며 키코(KIKO) 등 다른 통화옵션상품을 모두 합치면 2861억 원”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올해 초 태산엘시디와 14억 달러 규모의 피봇 계약을 했다.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태산엘시디는 이미 키코 등 다른 파생상품 거래로 올해 1∼6월 270억 원의 거래 손실을 봤고 피봇 평가손이 커지자 16일 법원에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한 상태다. 이 때문에 하나은행이 피봇 평가손을 떠안을 가능성이 커졌다.
푸르덴셜투자증권 성병수 연구원은 “태산엘시디의 경우 키코보다 피봇이 회생절차 신청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피봇은 원-달러 환율이 만기 시에 약정한 구간 안에 있으면 이익을 보지만 그 밖으로 나가면 투자자가 손실을 보는 환(換)헤지상품. 이 때문에 약정 구간 상단을 벗어날 때만 손실이 발생하는 키코보다 투자자에게 더 위험한 상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태산엘시디의 평가손은 만기 시점에 환율이 내려가면 규모가 줄어들지만 반대로 환율이 오르면 더욱 늘어나게 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태산엘시디의 자산매각 절차도 남아 있고 기업 회생절차에 따라서 태산엘시디가 자체적으로 손실을 부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지금의 평가손실이 그대로 하나은행의 평가손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19일 하나금융지주의 주가는 하나은행의 통화옵션 거래에 대한 손실 우려가 전해지며 전날보다 4.7% 급락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