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억 달러도 비싸다” 판단
HSBC, 한국서만 5번째 포기… 금융위 “일방 파기 유감”
19일 영국계 은행인 HSBC의 외환은행 인수 포기 결정은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국제 자금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 미국계 사모(私募)펀드 론스타와 1년 전 약속한 비싼 가격에 외환은행을 인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금융위기로 대형 투자은행(IB) 등 매력적인 매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모든 금융회사가 자금 조달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 외환은행 주가 하락이 결정타
19일 HSBC는 외환은행 인수 포기 발표를 하면서 “지난해 체결된 인수조건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주주들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협상 결렬의 가장 큰 이유가 가격에 있다는 부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지난해 9월 HSBC는 주당 1만8045원에 론스타가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인수하기로 계약했다. 당시의 외환은행 주식의 시장가격은 1만4600원. 올해 들어 현금 배당 등을 반영해 주당 1만7725원으로 가격을 조정했지만 외환은행 주가는 현재 1만1000원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1대 주주로서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얹어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HSBC 측이 판단한 것. HSBC 측은 최근 주당 인수가격을 1만2800원 정도로 낮추자고 요구했으나 론스타 측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금융시장 상황도 HSBC의 이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적 IB 등 금융회사들이 매물로 쏟아져 나오고 있고 HSBC도 현재 2위 IB인 모건스탠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매물로 나온 금융회사들의 주가도 폭락해 외환은행 인수대금인 60억 달러면 규모가 훨씬 크고 경쟁력 있는 금융회사의 경영권까지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다. 60억 달러는 한국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겠다며 제시한 가격.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론스타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싼 가격을 요구한 것도 이런 점을 고려해 계약을 깨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HSBC는 1998년 제일은행을 시작으로 1999년 서울, 2003년 한미, 2005년 제일 등 한국 시중은행 인수전에 4차례 뛰어들었다가 막판에 인수를 포기한 전례가 있다. 이번이 다섯 번째 인수 포기인 셈이다.
○ 금융당국 “정부 책임 아니다” 강조
이날 금융위원회 김광수 금융서비스국장은 “금융위의 ‘적극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HSBC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계약이 파기됐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나올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 사이먼 쿠퍼 HSBC 한국 대표도 “계약 파기는 가격 등 HSBC와 론스타 간 이견에 따른 것”이라고 말해 파기의 책임을 금융당국에 돌릴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승인 심사가 늦어지는 동안 외환은행의 주가가 떨어졌고, 결과적으로 계약이 파기되는 상황이 된 만큼 지분을 팔려던 론스타로서는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HSBC와 론스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7월 말에야 승인 심사를 개시한다는 뜻을 밝혔고 8월에 심사를 시작했던 것. 론스타는 7월에 “승인 절차가 지연되면 한국 정부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