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의 파장이 예상보다 커지자 국내에 진출한 영미계 은행들은 여파가 한국법인까지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은행권 일각에서는 19일 외환은행 인수 포기를 밝힌 영국계 HSBC가 이번 인수합병(M&A) 무산으로 한국 영업망을 축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HSBC가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로 주가가 급락한 영미계 투자은행(IB) 인수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외환은행을 포기했으며, 그렇다면 한국 지점 조직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최근 HSBC 11개 국내 지점의 여·수신 등 영업이 둔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HSBC 관계자는 “여·수신은 줄어도 수익은 향상되고 있어 국내 지점을 줄일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HSBC는 1998년 제일은행 인수에 실패한 후 1999년 서울은행, 2003년 한미은행, 2005년 제일은행에 이어 이번에 외환은행 인수까지 실패했다.
영국계 SC제일은행은 본부 조직 축소와 함께 16일부터 이달 말까지 10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 접수를 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지난달 본점 인원을 줄이고 영업점을 강화하겠다며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원래는 본점에서 감축된 인원을 영업점으로 모두 보내려고 했지만 영업점에서 이들을 다 받아들이는 데 난색을 표하자 희망퇴직 대상을 확대했다.
SC제일은행 노조 관계자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우리 은행은 큰 관계가 없지만 은행 측이 한국 시장 확대에 소극적인 것 같다”며 “이번 조직 개편이 구조조정의 시작이 될까 우려하는 직원이 제법 된다”고 말했다.
올해 초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큰 손실을 본 씨티그룹이 한국씨티은행을 매각하려 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씨티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매각설을 강력히 부인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이후 뒤숭숭한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씨티그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43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봤으며 이에 따라 약 1만4000명을 감원했다.
한 금융 전문가는 “외국계 은행은 해외 본사의 전략을 따른다”며 “금융위기로 본사가 보수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이들이 한국 시장에서 공격적인 영업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美 실리콘밸리도 감원 삭풍
불황에 자금난 겹쳐 실업률 4년만에 최고▼
경기 불황에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미국 첨단기술의 상징인 실리콘밸리마저 흔들리고 있다.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이 대량 감원에 나서면서 실리콘밸리의 실업률이 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새너제이머큐리뉴스는 실리콘밸리 내 샌타클래라와 샌베니토 카운티의 실업률이 최근 4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지난달에는 6.6%를 기록했다고 20일 보도했다. 이는 6.7%까지 치솟았던 2004년 7월 이후 최고치로 1년 전인 지난해 8월에 비해서는 1.6%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캘리포니아경제연구센터의 스티븐 레비 씨는 “불황으로 이미 많은 부가 사라졌으며, 경제기초가 튼튼한 실리콘밸리마저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실업과 함께 주택가격 하락, 투자손실 등 3중 악재가 당분간 미국인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닷컴 붕괴’ 위기에 버금가는 새로운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실리콘밸리 주요 기업들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인 HP는 향후 3년간 전체 인력의 7%가 넘는 2만46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컴퓨터 그래픽카드 제조업체인 엔비디아도 전체 직원의 6.5%인 360여 명을 10월 말까지 해고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파산보호 신청을 한 리먼브러더스가 주요 투자자인 러먼브러더스 벤처파트너스는 향후 추가 투자가 불투명해지면서 현재 매물로 나와 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