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 강화로 흘러선 안돼”

  • 입력 2008년 9월 22일 02시 56분


“월가 쇼크로 ‘금융 건전성 감독 필요성’ 논란”

전문가 “필요한 규제 유지하되 ‘완화’로 가야”

민주당 “미국식 모델 재검토… 규제 강화 필요”

미국발(發) 금융 충격에 따라 금융건전성 감독 강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논란이 이명박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 정책으로 옮아 붙고 있다.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의 김효석 원장은 21일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미국식 금융선진화 모델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이번 위기를 계기로 금융산업 규제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는 것.

그러나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건전성 감독 강화는 규제 완화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핑계로 규제 완화의 동력이 꺼지거나 규제 강화로 역주행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지나친 규제가 금융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건전성 감독 강화 필요성’을 ‘실물 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와 혼동하는 것은 논의의 초점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는 지적이다.

○ 금융규제 완화법안에 불똥

금융위원회는 다음 달 정기국회에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한국산업은행법, 자본시장통합법 등 18개의 법률 개정안과 불법추심방지법, 한국개발펀드(KDF)법 등 3개의 법률 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재 1300여 건의 금융규제 가운데 상당수를 없애거나 완화할 방침이다. 금융회사의 신규 설립요건 완화, 파생금융상품 발행과 거래에 대한 규제완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지분 한도 확대, 금융지주회사에 제조업 자회사 허용, 헤지펀드 허용 등이 대표적.

이들 금융규제 완화 법안은 정기국회 기간 중 야당의 주요 공격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투자은행(IB) 몰락의 영향으로 산업은행을 한국형 IB로 육성하려는 정부의 방안은 이미 여야 의원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산업은행이 인수를 추진했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상황에서 자칫 부실덩어리를 떠안을 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관련 장관 및 수석비서관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상황에 앞질러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국회에 제출된 금산(금융·산업자본) 분리 완화 법안 등 규제개혁 법안들이 신속히 처리되도록 당정 간 협조하고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신속히 행동으로 옮기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점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 옥석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

전문가들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과민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이런 때일수록 옥석(玉石)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에서 제기되는 ‘금융 건전성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금융산업에 대한 통제 강화’나 관치금융 부활과 혼동하는 것은 논의의 초점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찬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규제완화로 금융기업의 업무 영역을 확대하면 리스크가 수반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를 줄이기 위한 건전성 감독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금융규제 완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식 IB모델이 문제라지만 이번에 위기를 부른 파생상품 투자는 IB의 여러 업무영역 중 하나로 글로벌 인수합병(M&A) 중개 등 한국금융이 배우고 도전할 영역은 여전히 많다는 설명이다.

다만 금융규제 완화의 폭과 속도는 조절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힘을 얻고 있다.

연세대 김정식(경제학) 교수는 “건전성 감독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금융산업의 실력을 감안할 때 갑작스러운 금융규제 완화는 금융회사들의 옷을 벗긴 채 추운 벌판으로 내보내는 격”이라며 “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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