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규제 강화에 외국인 매수세로

  • 입력 2008년 9월 25일 02시 55분


《“증시 교란의 주범인가, 시장 활성화의 촉매제인가.” 금융당국이 24일 공(空)매도 규제를 강화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세계 증시가 동반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매도가 증시 하락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뉴욕 증시가 급락한 미국은 물론 독일, 호주 등 선진국들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 사태 이후 증시 변동성이 커지자 공매도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공매도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이미 공매도를 통제하는 장치가 있는 데다 시장의 유동성 확장 등 공매도가 가진 순기능이 일부 있다는 점에서 공매도 자체를 폄훼하는 것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일부 증시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외국인 ‘빌린 주식 되사기’… 어제 448억원 순매수

공매도 비중 높은 한진해운-신세계-현대차 ‘수혜’

○ 대차거래잔액 주식수 줄어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다른 투자자에게서 주식을 빌려(대차거래) 매도하는 투자 기법이다. 공매도를 한 뒤 주가가 떨어지면 주가가 떨어진 만큼 싸게 사 되갚으면 되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할수록 이익이 커진다. 하지만 주가가 상승하면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이 때문에 국내 증시에서 체결되는 공매도의 90% 이상을 하는 외국인투자가들은 올해 들어 한국 증시가 침체를 이어가자 공매도에 열을 올렸다. 미국 등 자국의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현금 확보 목적도 있었지만 주가 하락기에 수익을 올리려는 의도도 내포돼 있었다.

실제로 국내 증시의 하락세가 두드러진 올해 2분기(4∼6월) 이후 전체 거래금액에서 차지하는 공매도 규모가 6월 3.7%, 7월 4.1%, 8월 5.3% 등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 뉴욕 증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가 소폭 반등하고, 금융당국의 공매도 규제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외국인의 처지가 다급해지고 있다.

공매도를 한 외국인이 이득을 얻으려면 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공매도를 위한 주식을 많이 빌려줬던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주식 대여를 잠정 중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연금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외국인에게 빌려줬던 주식에 대해 조기 상환을 요구하면서 이제 외국인은 빌렸던 주식을 사서 되갚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 때문에 이달 들어 외국인을 중심으로 빌린 주식을 갚기 위해 해당 종목을 다시 사는 이른바 ‘쇼트커버링(short covering)’이 증시에서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의 쇼트커버링 회귀에 대한 증거로 증시 전문가들은 최근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의 강한 매수세를 꼽고 있다.

보통 미국 증시가 하락하면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팔아 왔지만 24일에는 뉴욕 증시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448억 원어치의 순매수(매입액에서 매도액을 뺀 것)를 나타냈다.

대차거래 잔액 주식 수도 꾸준히 줄고 있다. 19일 6억8197만여 주에서 22일 6억6460만여 주, 23일 6억5224만여 주 등으로 감소했다.

○ 공매도 많았던 우량주 유망한 듯

외국인이 공매도에 따른 손실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크다면 과거 공매도가 집중됐던 종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외국인이 해당 주식을 사서 대여자에게 다시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증시 전문가들은 상반기 전체 발행 주식 수에서 차지하는 공매도 비중이 높았던 우량주의 주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23일 기준으로 이 비율은 한진해운(23%), 신세계(20.9%), 현대자동차(17.2%), 에스오일(15.6%) 등으로 높았다.

공매도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공매도는 투자자에게는 하락기에 이익을 줄 수 있고 시장의 유동성을 강화하는 기제가 된다”고 말했다.

또 최근 한국 증시가 FTSE 선진지수에 편입된 것도 대차거래를 선진국 수준으로 활성화했다는 게 주요 편입 이유 중 하나였다.

한편 24일 코스피는 전날(현지 시간) 뉴욕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1.47% 내렸는데도 14.61포인트(0.99%) 올라 1,495.98에 마감됐다. 코스닥지수도 0.69% 올랐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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