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합의로 달러 강세-유동성 불안감 겹쳐
‘키코’가입 中企 피해 확대… 서민 물가부담 커져
증시에도 악영향… 코스피 19.97P 하락한 1,456
■ 외환시장 다시 비상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약 4년 9개월 만에 최고치인 1188원 선까지 급등했다.
원-달러 환율이 두 달 만에 180원 이상 상승하면서 ‘키코(KIKO)’ 등 통화옵션 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과 서민의 물가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8.30원 오른 1188.80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는 2004년 1월 5일(1192.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
이날 오후 원-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1200원까지 치솟자 외환시장은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외환당국은 오전 “환율의 변동이 과도하다”며 구두 개입한 데 이어 오후에는 달러 팔자 개입에 나서며 종가 관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환율은 장 초반부터 상승세를 탔다. 미국 구제금융 법안의 합의 소식으로 달러화가 주요국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인 데다 국내 달러 유동성 부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상승폭이 커졌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수출보험공사의 환헤지 손절매수 물량이 쏟아지고 은행권의 추격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환율이 1200원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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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우 SC제일은행 상무는 “달러를 쥐고 있는 수출기업조차 달러를 내놓지 않을 정도로 시장의 막연한 불안감과 군중심리가 너무 심각하다”며 “환율이 급하게 오를수록 급락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외환 전문가들은 경상수지 적자 속에서 국내 달러 수급에 대한 불안감이 환율 급등락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할수록 국내 달러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는 것.
무역수지는 올해 들어 8월까지 115억7000만 달러 적자를 보이고 있다. 증시에서도 외국인은 올해 들어 9개월간 32조4000억 원(약 425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과거에는 월말에 수출업체의 달러 팔자가 많았지만 요즘은 무역수지 적자 등으로 수입업체의 사자 주문이 우세를 보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 중 100억 달러 이상을 외환스와프시장에 풀겠다고 밝힌 점도 현물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 감소를 우려해 공격적인 현물시장 개입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선에 육박하면서 통화옵션상품인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의 피해와 물가 상승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키코는 환율이 계약한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계약 금액의 1∼3배의 달러를 팔아야 해 환율이 상승할수록 손실이 불어나는 구조다.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 102개사 중 70개사가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서면 부도 위험에 놓인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환율 상승의 여파로 서울 증시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9.97포인트(1.35%) 내린 1,456.36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2.29포인트(0.51%) 내린 446.05에 마감됐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