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은 옛말… 길어진 수명에 위기감 고조
“벌 수 있을때 미리 대비” 20대부터 노후 준비
“실력이 최고” 유학-자격증 등 커리어관리 열심
‘쓸때는 쓴다’ 이중 소비형태… 과소비 우려도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모(27·여) 씨는 하루를 부동산 정보사이트 검색으로 시작한다. 연봉 4000만 원 정도인 김 씨는 5월, 8월에 각각 전세를 끼고 경기도 내 소형 아파트 두 채를 샀다. 이 중 한 채는 8700만 원에서 지금은 1억 원으로, 다른 한 채는 1억1000만 원에서 1억1300만 원으로 올랐다. 실패 가능성을 줄이려고 김 씨는 퇴근 후 부동산 경매학원에 다니고, 부동산 관련 서적 수십 권을 독파했다. 2004년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월급을 주식과 펀드, 상호저축은행 예금에 투자해 오다 올해부터 부동산 투자도 시작했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로 컨설팅 회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월 50만 원의 수입을 추가로 올린다. 김 씨는 “회사가 10년 후 미래까지 보장해 주진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
‘평생직장’이 없어졌고, 은행 금리로 돈을 불릴 수 없는 이 시대를 사는 2030세대에게 주식 펀드 부동산 등으로 월급을 굴리는 ‘똑똑한 재테크(Intelligent Portfolio)’는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20대 초·중반부터 확실한 비전을 갖고 자산관리를 시작해 노후를 준비한다.
○ 입사하자마자 연금보험
그는 “1학년 때 학비를 벌려고 전단지 돌리기, 자판기 관리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큰돈을 벌지 못했다”며 “자판기 관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관련 커피회사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때부터 주식 투자로 등록금과 생활비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은 “은행 금리가 두 자릿수였던 2000년대 이전에는 은행에 저축하면 이자로 돈을 불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젊은 세대는 펀드 가입을 필수로 여길 정도로 투자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오래 사는 데 따른 위험’에 대비해 20대부터 노후를 준비하는 IP세대도 적지 않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9.1세. IP세대가 장년층이 될 때면 평균수명이 80세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1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정영환(27) 씨는 입사하면서 곧장 연금보험에 가입해 매달 35만 원씩 붓고 있다. 정 씨는 “내가 은퇴할 때가 되면 평균수명이 굉장히 길어질 것”이라며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노후자금을 마련해 놓으려 한다”고 말했다.
○ 모은 돈 전부 MBA 학비로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1970, 80년대에 주로 태어난 지금의 20, 30대는 어린 시절 물질적 풍요를 누린 ‘축복받은 세대’로 불렸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사오정’(45세가 정년) 등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고용시장이 악화됐고, 경쟁력이 떨어지면 아예 사회 진출을 못하는 무한경쟁 시대가 열렸다.
이 때문에 IP세대는 돈을 모으는 것 못지않게 유학, 자격증 등으로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커리어(경력) 테크’에 열심이다.
국내 외국계 금융기관에 다니는 A(31) 씨는 2005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해 모은 돈을 전부 경영전문대학원(MBA) 학비로 쓸 계획이다. MBA 유학의 예상 비용은 약 2억 원으로 대출까지 받아야 한다. 좋은 MBA 과정에 입학하려고 토플(TOEFL), 경영대학원 입학시험(GMAT) 학원비, 원서비 등으로 지난해부터 쓴 돈만 500만 원이 넘는다.
대홍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최숙희 부장은 “외환위기 당시 아버지의 실직, 대학 선배의 취업 실패를 눈으로 보고 자란 IP세대는 미래에 대한 준비가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젊은 나이에는 돈보다 스스로에 대한 투자가 최고의 가치”라며 “지금까지 번 돈을 모두 쏟아 부어도 결국 나중에 그만큼 보답을 받을 거라 생각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 리스크 항상 염두에 둬야
IP세대의 재테크와 소비를 지배하는 원칙은 ‘미래를 위해 똑똑하게 재테크하되, 쓸 때는 확실히 쓴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최대한 아끼고, 남는 돈은 모두 저축하자’는 이전 세대와 분명히 다른 것.
치과의사 신모(27·여) 씨는 ‘여행 마니아’다. 휴가와 연휴를 이용해 1년에 5번 이상 해외여행을 떠난다. 올해 추석에도 미국 뉴욕에 다녀왔다. 신 씨는 “1년에 두 달 정도는 해외여행을 하지만 수입의 20% 정도를 여행 경비로 쓴다”면서 “다른 소비를 줄이면 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문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IP세대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나머지 품목에는 극단적으로 절약하는 양극화된 소비 성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IP세대의 소비 성향은 자칫하면 ‘과소비’로 흐를 위험도 있다. ‘신상녀’(신상품을 좋아하는 여성) ‘된장녀’(서구식 소비나 명품을 선호하는 여성) 등 젊은 세대의 소비 성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신조어들이 생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김 교수는 “젊은 세대들이 저축보다 수익이 높은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더 풍부하게 소비하려 하지만 투자에는 항상 ‘리스크(위험)’가 따르는 것”이라며 “현명한 소비습관 없이 이런 재테크, 소비 패턴을 유지하다간 생활의 ‘버블’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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