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혁명 워낙 빨리 이뤄져
사용자가 임으로 쓴 잘못된 어법 생활화돼
업계-학계 바로 잡아야”
퀴즈 하나.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문서프로그램 종료 때 뜨는 ‘이 문서를 저장하시겠습니까’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일까요, ‘아니요’일까요?
정답은 ‘아니요’.
너무 쉽다고요? 윈도 XP가 나오기 직전까지 우리는 계속 ‘아니오’를 써왔습니다. ‘아니오’는 틀린 표현입니다.
잘못된 정보기술(IT) 용어를 바로잡는 ‘언어치료사’가 우리나라에 딱 한 명 있습니다. 한국MS의 남효정 수석연구원입니다.
그는 불어교육과 영어교육을 전공한 여성으로 해외교포도 아니고 번역가가 되려고 언어를 공부한 것도 아니었죠. 단지 언어가 재밌어서 시작한 일이 그녀에게 ‘용어전문가(terminologist)’라는 직함을 달아줬습니다.
그는 15년 전 당시 새로운 시장이던 기술번역 쪽에 처음 발을 내디디며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설명서나 매뉴얼부터 마케팅 브로슈어까지, 해당 제품에 사용되는 모든 언어를 번역하는 거죠. 관련 용어나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단순한 문장 번역밖에 안 되기 때문에 전문성이 필요해요.”
7년 전 MS에 입사한 그는 MS 브라우저, 소프트웨어 등 각종 제품에 쓰이는 수만 개의 IT 관련 용어를 최적화된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세계 MS 지사를 통틀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11명뿐이죠. 이들은 모두 MS 언어포털(www.microsoft.com/language)에서 IT 용어의 정확한 번역과 표기법을 알리고 정착시키는 일을 합니다.
“한국은 IT 발전이 워낙 빠르게 이뤄졌기 때문에 용어 표준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어요. 유럽에선 이미 흔한 직업인 제 일이 한국에선 아직까지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만 봐도 여전히 이 분야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거죠.”
한국은 IT 혁명이 워낙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사용자들이 임의로 써온 잘못된 어법이나 엉뚱한 의미의 용어가 그대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등록정보’로 오역된 ‘property’를 본래 뜻인 ‘속성’으로 바꿨고,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나는 ‘어플리케이션’은 ‘애플리케이션’으로 바로잡았습니다.
누구나 어떤 제품이나 프로그램을 사용하다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바로 찾아볼 수 있는 IT 용어 표준대사전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 3월부터 업계, 학계, 언론계 및 국립국어원 관계자들이 모여 용어를 정리하는 ‘제1회 IT 용어 포럼’에도 열심히 참가하고 있습니다. IBM, 안철수연구소, 엔씨소프트 등 포럼 회원사들이 우선 정리한 용어 1000개는 현재 국립국어원이 내년 초 선보일 ‘온라인 전문용어 사전 시스템’에 포함시키기 위해 심사 과정에 있습니다.
“MS가 앞장서서 한글화를 시도해도 그건 MS의 용어일 뿐이지 정확한 표준 용어는 아닙니다. 한국 IT의 제2 전성기를 위해 정부, 업계, 학계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용어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죠.”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