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맞춰쓰는 ‘출구 관리’ 너무 소홀
“한국 사람들은 자산관리를 할 때 돈을 버는 방법인 ‘입구 관리’에만 너무나 열심인 것 같다. 벌어 놓은 돈이 모자랄 경우에는 어떻게 맞춰 살 것인가, 또는 부자가 됐을 때 그 돈을 어떻게 아름답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는 출구 관리에 대해서는 교육이 거의 안 돼 있다.”
한국에서 4년 동안 특파원으로 활동하다 얼마 전에 귀국한 한 일본 언론인이 떠나면서 남기고 간 말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그의 말이 그다지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서점에 가 보면 ‘재산을 두 배로 불리는 법’ ‘X억 원 만들기’ 등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재테크 서적이 범람해 있습니다.
금융기관에서도 “노후가 편하려면 10억 원은 있어야 한다, 최소한 7억 원은 필요하다”는 식의 자료를 발표하고, 언론에서는 이를 인용해 보도하곤 합니다. 물론 닥칠 미래를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뜻이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너무나 먼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자꾸 단기간에 돈을 불리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해 4월 동아일보에 연재된 한 특집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50대 후반 직장인이 회사를 그만 둘 때의 평균재산은 2억80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 살고 있는 집을 뺀 금융자산은 6000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형편이 이런데 10억 원이니 7억 원이니 하는 보도를 보면 초조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노후생활비가 모자라는 사례는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노후생활을 해나갈까요. 우선 형편에 맞춰 살아갈 방도를 궁리합니다. 그리고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해서 한 푼이라도 생활비를 벌겠다는 각오를 합니다. 반면에 노력한 덕분에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그 돈을 어떻게 아름답게 쓸 것인가, 어떻게 보람 있는 인생을 보낼 것인가를 주로 생각합니다. 기부활동 사회봉사활동 등이 이에 속합니다. 그들은 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주어진 경제적 상황에 맞춰 사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도 금융 경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 내용을 보면 지나치게 돈을 버는 방법에만 편중돼 있는 것 같습니다. 버는 방법 못지않게 쓰는 방법에 대한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야겠습니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
정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