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주식매도 → 환율상승 → 주가하락 악순환
매도액 갈수록 커져… ‘셀 코리아’ 망령 되살아나
올해 들어 한국 증시의 최대 부담 요인이었던 ‘셀 코리아(Sell Korea)’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코스피가 16일 사상 최대 폭으로 하락한 것은 글로벌 경기침체 공포가 확산되면서 투자 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결과이지만 직접적으로는 외국인투자가들이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이날 코스피시장에서는 연기금이 1400억여 원어치를 순매수(매입액에서 매도액을 뺀 것)하면서 주가 폭락을 저지하기 위한 소방수로 나섰지만 외국인들이 6204억 원어치를 순매도하자 주가는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특히 7월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외국인 매도세가 이달 들어 부쩍 거세지는 추세여서 향후 증시 침체와 환율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이라는 이중의 손실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면서 다시 환율이 상승하는 악순환의 조짐이 보인다.
○ 10월 들어 외국인 매도세 증가
외국인의 한국 주식 처분은 7월 이후 연속 두 달간 감소하는 추세였다.
7월 미국 양대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외국인 순매도 금액(코스피시장 기준)은 4조9404억 원까지 증가했지만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자 8월에는 3조51억 원으로 줄었다.
9월에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 사태로 세계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졌는데도 순매도 금액은 2조6702억 원으로 전달보다 감소했다.
하지만 10월 들어서는 외국인의 주식 매도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16일까지 11거래일 중에서 1382억 원어치를 순매수한 14일 하루를 뺀 10거래일간 주식을 대거 팔았다. 지난달 총 21일 거래일 가운데 절반인 7일간 주식을 순매수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이달 들어 외국인이 순매도하는 금액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1일부터 9일까지는 최대 3000억 원대 수준이었지만 10일 이후에는 4000억∼6000억 원대로 규모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이달 16일까지 외국인 순매도 금액이 지난달 총액을 이미 넘어섰다.
이달 들어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한국 증시의 외국인 자금 이탈이 컸다. 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외국인 순매도 금액은 한국이 23억3000만 달러로 대만(17억4000만 달러), 인도(15억 달러), 태국(2억2000만 달러) 등에 비해 많았다.
○ 외국인 매도세로 환율 상승 우려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서 주식을 대거 파는 것은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관련된 부실 채권을 많이 들고 있는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자신들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금화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한국에서 주식을 팔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화되고 이로 인해 실물경기 침체가 가속화하자 외국인들이 한국의 금융시스템을 포함한 한국경제 전체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기업의 실적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고 경상수지 적자로 원화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중으로 손해 볼 것을 우려하는 외국인이 주식을 마구 팔아치우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에 투자하면서 대부분 환헤지를 하지 않는다.
슈로더투신운용 장득수 전무는 “외국인들은 수출을 통해 주로 성장하는 한국이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앞으로 경제가 약해질 것으로 보고 주식을 파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외국인들이 주식을 많이 팔면 우선 수급 기반이 허약해지고 있는 증시가 직격탄을 맞게 된다. 그동안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도 국내 주식형펀드 자금이 증시의 완충 역할을 했지만 이제 주식형펀드로 들어오는 자금이 줄면서 외국인 매도가 증시에 미치는 충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수석연구원은 “요즘 외국인은 주식을 되사기 위해 파는 게 아니라 본국으로 돈을 빼가기 위해서 주식을 팔고 있다”며 “외국인의 주식 매도는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 증가로 이어져 환율 상승의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