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투자 원칙 버리고 브릭스시장 편중

  • 입력 2008년 10월 19일 22시 13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 펀드'가 출시 1년 만에 원금의 절반을 까먹었다. 지금 성적만 놓고 본다면 당시 이 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드롬'은 '신기루'로 판명된 셈이다.

인사이트 펀드의 몰락은 운용사 및 판매사의 무리한 홍보와 펀드 운용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투자자들의 '묻지마'식 투자, 당국의 감독 소홀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그만큼 국내 자산운용업계와 펀드 투자자들이 이를 계기로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조 원 이상 허공에 날려

19일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31일 설정된 '미래에셋인사이트혼합형자 1Class-A' 펀드의 수익률(설정 이후)은 17일 기준 -48.62%로 사실상 '반토막'이 났다. 1년 전에 이 펀드에 1억 원을 투자했다면 현재 평가손실이 5000만 원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올해 초 4조7000억 원까지 불어났던 펀드의 순자산은 약 2조5000억 원으로 줄어 투자자들은 모두 2조 원 이상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설정액도 올해 5월말(4조8764억 원)을 정점으로 매월 줄어들면서 15일 현재 4조7114억 원까지 떨어졌다. 설정액이 줄어든다는 것은 수익률 악화를 참지 못 하고 중도에 환매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저조한 수익률은 물론 금융위기에 따른 글로벌 증시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다른 해외펀드들과 비교해도 성적이 그리 우수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이 펀드의 연초 대비 수익률은 -46.05%로 같은 유형의 글로벌주식펀드(-44.92%)는 물론이고 전체 해외 주식형펀드(-45.17%)보다도 수익률이 낮았다. 미래에셋은 이렇게 손실을 내면서도 다른 펀드보다 더 많은 운용수수료(순자산 대비 연 1.5%)를 투자자에게서 떼 간다.

●운용판단 잘못과 투자자의 맹신

인사이트펀드는 효율적인 분산투자로 시장위험에 대처한다는 원래 취지와 달리 운용 자금의 대부분을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BRICs) 국가에 투자해 손실을 키웠다.

6월말 운용보고서에 따르면 이 펀드의 국가별 투자비중은 중국(홍콩) 61.05%, 브라질 7.12%, 러시아 5.41%, 인도 1.66% 등으로 브릭스의 비중이 75%를 넘는다. 투자 비중이 가장 큰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와 홍콩H지수는 각각 작년 고점 대비 60% 이상 급락한 상태다.

운용방식 자체가 '자산배분'이라는 당초 철학과 맞지 않은데다 "중국경제가 주식투자 광풍이 분 뒤 급속히 식을 수 있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중국 투자에 매진하면서 가치판단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드러냈다.

펀드에 대한 과도한 홍보와 일부 투자자들의 쏠림 현상도 사태를 키웠다.

인사이트 펀드는 당시 '직관에 따라 투자하는 펀드',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투자하는 펀드' 등으로 선전되고 심지어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직접 운용한다"는 입소문까지 퍼졌다. 이런 소문들은 미래에셋 측이 일부 부인하기도 했지만 판매사들을 중심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투자자들도 다른 운용사에 비해 실적이 좋은 미래에셋이 야심차게 내놓은 대표 펀드라는 것에 솔깃해 '묻지마'식 투자를 감행했다. 게 중에는 금융자산을 모두 헐어 이 펀드에 '올인'(다걸기)하는 투자자들도 많았다. 투자자들은 펀드 가입을 위해 은행 창구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했고 일부 은행에서는 판매 일주일 만에 한도액이 소진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분산투자 원칙도 안 지켜

자산운용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인사이트 펀드의 실패는 운용사와 판매사, 투자자 모두의 책임"이라며 "신드롬의 초기 진화에 실패한 정부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아무리 예전에 성적이 좋았던 운용사도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 자산운용사의 본부장급 임원도 "작년까지 약 4~5년 간 주가가 오르는 것만 경험해 온 사람들이 높은 수익률에는 항상 높은 리스크가 수반되기 마련이라는 투자의 정석을 잠시 잊어버린 것 같다"고 꼬집었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인사이트 펀드가 다른 해외펀드에 비해 수익률이 월등히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분산투자를 하되 가능성 있는 곳에 집중 투자하는 것을 두고 '몰빵 투자'라고 비난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인사이트(insight·통찰력) 펀드::

지난해 10월말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특정 지역이나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수익을 낼만한 곳을 찾아 투자대상을 자유롭게 옮긴다"는 전략으로 출시한 해외주식형펀드. 이 펀드는 설정 이후 한 달 간 약 4조 원의 시중 자금을 끌어 모으며 큰 인기몰이를 했다. 당시에는 증시가 많이 올라 새로운 투자처가 필요한 시기였고 마침 수탁고 기준 업계 1위인 미래에셋이 새로운 펀드를 내놓자 투자자들 사이에 이 펀드를 너도나도 가입하려는 신드롬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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