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런 우려’ 자산운용사 현금 확보 → 증시 하락 악순환

  • 입력 2008년 10월 24일 02시 56분


고민 깊은 韓銀총재 23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날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확정지었다. 홍진환 기자
고민 깊은 韓銀총재 23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날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확정지었다. 홍진환 기자
은행권 고금리에 돈몰려 저축銀 - 카드사도 돈가뭄 확산

정부, 증권사 등에 유동성 공급해 주식매도 불끄기 나서

■ 제2금융권이 자금경색 ‘블랙홀’

요즘 자금시장 경색의 핵심은 제2금융권이다. 특히 자산운용사들이 심하다. 최근 자산운용사들은 증시 불안으로 고객들의 펀드환매 요구가 높아지자 조금이라도 현금을 더 보유하려고 주식을 팔고 있다.

22일 코스피시장에서 자산운용사들은 1626억 원어치를 순매도(매도액에서 매입액을 뺀 것)한 데 이어 23일에도 256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최근 증시 폭락의 주범은 자산운용사인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한국은행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증시활성화 방안은 투자심리가 위축된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에게 자금을 공급해 주가의 추가 하락을 막으려는 것이다.

○ 일부 대형 증권사도 자금 못 구해

임승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23일 “기관투자가들은 요즘 펀드환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평소 (펀드자산 총액의) 5% 정도였던 유동성 비율을 8∼10%로 늘렸다”면서 “환매 요구가 들어오면 완충 역할을 하기는커녕 자기 주식까지 팔아치우는 등 기관투자가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 증권사들은 환매 사태 등에 대비해 서둘러 자금통로를 확보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한국증권금융에 담보를 주고 돈을 빌릴 수 있는 한도를 2000억 원에서 8000억 원으로 늘렸다. 미래에셋증권이 단기차입금 한도를 확대한 것은 2006년 이후 처음이다. 삼성증권도 기업어음(CP) 발행 한도를 추가로 5000억 원 설정했다.

자금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증권사의 한 간부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전에 대형증권사들은 콜시장에서 만기 1개월 이내 자금을 3000억 원씩 빌릴 수 있었지만 요즘 몇몇 대형 증권사는 콜시장에서 아예 자금을 구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 기관투자가 투자심리 회복 유도

증권회사, 자산운용사들이 한국증권금융에 맡긴 국고채, 통화안정증권을 한은이 사들여 제2금융권에 유동성을 공급하도록 한다는 금융위의 방침은 기관투자가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투자심리를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대형 자산운용사 간부는 “유동성이 확대되면 주식을 사들일 여지가 커지고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자산운용업계의 유동성 문제를 정부가 거론함으로써 투자자들이 ‘내 펀드가 위험할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증권사들은 은행보다 차입비율이 낮고 미국의 투자은행(IB)들과 달리 자기자본 투자의 비중도 크지 않아 장기적인 유동성 위험은 적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한은이 유동성을 공급해 증시에 매수세가 커지면 외국인투자가들이 이 기회를 이용해 주식을 더 팔고 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대부업체도 신용경색

신용경색은 신용카드사, 캐피털업체,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으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유동성이 부족한 은행들이 높은 금리의 은행채를 발행하거나 고금리의 예금상품을 내놓으면서 돈이 안전한 은행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지주는 20일 열린 이사회에서 계열사 우리파이낸셜에 3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캐피털업체인 우리파이낸셜은 회사채 CP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을 통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카드사들은 최근 회사채 금리가 8% 중반까지 올라 자금조달의 부담이 커졌다.

삼성카드는 20일 100억 원 규모의 2년 만기 회사채를 연 8.53% 금리로 발행했다. 4월 말과 비교할 때 발행 금리가 2.53%포인트 오른 것이다.

정기예금 등 수신으로 자금을 충당하고 있는 저축은행은 최근 예금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9%에 바싹 다가섰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은행권이 7%대 특판 예금을 내놓고 있어 은행과 금리 차를 둬야 하는 저축은행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대부소비자금융협회에 따르면 45개 중대형 대부업체의 신규대출은 7월 1886억 원에서 8월 1627억 원, 9월 1105억 원으로 크게 줄었다.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금처럼 은행들이 금리를 높이면 그쪽으로 자금이 몰려 제2금융권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금융위는 한은이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 대상에 은행채를 포함시켜 은행권의 금리가 낮아지길 기대하고 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 영상취재 : 임광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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