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현금이나 단기 유동자산이 부족한 금융기관이나 기업은 파산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유동성위기 상황이 되면 금융시장에서는 신용위험이 높은 금융기관이나 기업과의 거래를 줄이거나 추가적인 채무에 담보를 요구하는 등의 행동이 나타나게 돼 해당 기업의 단기 유동성은 더욱 나빠지게 된다. 올해 9월 중순까지 발생했던 부실 금융기관의 파산이나 피합병 등은 이런 유동성위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유동성위기는 신뢰위기로 변했다. 신뢰위기란 신용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거래 자체가 위축되는 현상을 말한다. 리먼브러더스라는 미국 4위의 투자은행이 파산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기업도 파산의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대형 금융기관이나 기업은 물론 외환위기 가능성이 있는 국가까지 포함된다.
미국 정책당국이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을 발표한 시기는 마침 금융위기가 신뢰위기 단계로 넘어간 시점이었다. 위기는 모든 신용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쪽으로 진전되는 상황이었는데도 여전히 미국 정책당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과 관련된 유동성위기에 대응하는 대책을 발표하는 바람에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이제는 신뢰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의 지원이 불가피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주요국은 기준금리 공동 인하 모색 등 정책 공조와 유동성 지원 등을 통해 시장 신뢰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도 은행의 외화 유동성 문제와 관련해 국제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얻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실제 유동성 상황과 상관없이 정부가 은행채무에 대해 지급보증을 하기로 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 회복을 모색했던 것이다.
문제는 신뢰위기가 유동성위기와 달리 구체적인 부실이나 위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공포나 위협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부의 지원 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시장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면 금융 불안이 해소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위기 극복 방안도 결국 시장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판단된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