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의회에서는 투자은행의 전직 최고경영자(CEO)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세계 3대 신용평가사 CEO들의 전범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이번 ‘버블’ 붕괴의 주범으로 지난 20년간의 세계 증시 버블이 이들의 ‘삼위일체 사기극’이었다고 지탄받고 있다.
이들과 함께 매도 타이밍을 제시해주지 못한 증시 전문가들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매도 타이밍을 사전에 알 수 있을까? 매도 타이밍은 사후에 확인될 뿐이다. 주식투자의 천재인 워런 버핏도 매도 타이밍을 모르기 때문에 영원히 보유하는 투자전략을 고수한다. 매도 타이밍이란 투자자나 증시 전문가의 직관의 영역이고 베팅일 뿐이다. 투자자가 어떤 의견에 따르는가도 투자자의 베팅이다.
정말로 분노해야 할 대상은 움직임이 너무 느린 현직 금융시스템의 주체들이다. 이들은 무너진 둑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못 주고 있다. 정책금리를 내려도 시장금리가 내려가지 않는다. 시중은행은 자금조달 비용(정책금리)이 떨어져도 대출금리를 낮추지 않고 있다. 위기 해법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대출금리 때문에 가계와 기업이 파산하고 이것이 은행의 파산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현직 정책 담당자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너무 비관적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비관론자들의 저주일 수도 있다.
이번 폭락장을 사전에 경고했던 대표적인 ‘선지자’들도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다. 상품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미국 주식을 팔고 상품(원자재)을 사라고 주장했지만 상품 가격도 주식 가격 이상으로 하락했다. 약세장 예언가로 유명한 마크 파버도 미국 주식을 팔고 중국 주식을 사라고 일찍부터 주장했지만 중국 주가는 미국 주가보다 더 폭락했다.
주식 가격만 떨어진 것이 아니고 부동산 가격도 똑같이 떨어지고 원자재 가격도 떨어졌다. 전 세계 모든 자산의 가격이 동시에 거의 비슷하게 떨어졌으니 내가 가진 자산의 구매력은 그대로인 셈이다. 현금을 미리 확보했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전 세계가 금리를 인하해야 하고 금리가 떨어지게 되면 예금이자도 반으로 줄어드니 예금가치 역시 마찬가지로 하락할 것이다.
그러니 미리 현금화하지 못한 것을 너무 원통해할 필요도 없다. 1982년 미국시민은 2차 오일쇼크로 고점에서 50% 폭락한 주가로 절망의 밑바닥에 빠져 있었다. 당시 뉴스위크는 ‘주식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그 당시 800이었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현재 또다시 고점 대비 50% 가까이 폭락했지만 그때의 10배 수준이 넘는 9,000이라는 점을 분노한 투자자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박춘호 이토마토 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