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신드롬

  • 입력 2008년 10월 30일 09시 50분


다음 아고라 경제방에 글을 올려온 미네르바는 200여개의 경제 칼럼으로 온라인 경제대통령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출처=다음 아고라 캡처 화면]
다음 아고라 경제방에 글을 올려온 미네르바는 200여개의 경제 칼럼으로 온라인 경제대통령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출처=다음 아고라 캡처 화면]
미네르바가 지적하는 강만수 장관의 문제는 소망교회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급주의 경제학에 매몰되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에서 찾는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미네르바가 지적하는 강만수 장관의 문제는 소망교회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급주의 경제학에 매몰되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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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언급한 노란 토끼란 조지 소로스 같은 국제 투기자본의 한국 자본시장 집중 공략을 의미하는 것일까.동아일보자료사진
미네르바가 언급한 노란 토끼란 조지 소로스 같은 국제 투기자본의 한국 자본시장 집중 공략을 의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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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같은 환시장 예측, 개미 투자자들 열광

《"…긴말 안하겠다. 내가 예전부터 제2금융권 포지션 최대한 정리하라고 분명하게 얘기 했지? 지금 금융 안정화 어쩌고 …하는데 웃기지 좀 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파생부터 시작해서 금융 부실 연계상품까지 관련 액수만 40조야. 40조원도 아니고 40조 달러. 한국 정도는 한 방에 끝장 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리스크 관리 하라는 소리야…. 난 애시당초 한국 경제 펀더멘탈 따위는 X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2008년 10월 20일 다음아고라 경제방)》

독설(毒舌)도 이 만한 독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 정체모를 이의 한 마디에 누리꾼들이 열광한다. 다름 아닌 최근 '온라인 경제대통령'으로 떠오른 '미네르바(필명)'가 그 주인공이다. 단 몇 개의 논평으로 인기를 얻을 리는 만무한 일. 올 3월부터 그가 다음 아고라 경제 토론방에 띄운 글이 무려 200편에 달한다.

술에 취한 듯, 일기를 쓰듯 내뱉는 그의 한숨은 단순한 푸념이 아닌 단단한 경제 이론으로 꽉 차 있다. 한국의 부동산 거품 경고에서 시작한 그의 경제논평은 세계경제의 모순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위기를 정확하게 경고하면서 온라인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의 글이 갈수록 주목을 받고 정체가 누군지에 대한 논란이 일자 미네르바는 29일 당분간 인터넷에 글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해 다음 아고라 매니아들을 긴장시켰다.

절필 선언의 이유에 대해 "살해 협박까지 당하고 돈 한 푼 안 되는 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누리꾼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 미네르바 열풍 불다

무엇보다 '미네르바 열풍'의 배경에는 마치 족집게 도사를 연상케 하는 정확한 예측이 결정적이었다. 이미 올해 봄부터 미국판 서브프라임 불똥이 한국에 튄다는 것을 예고했고, 환율이 미동도 않던 8월에 한국경제의 대풍랑을, 9월에는 환율 1400원대를 예고했다.

때문에 그에 대한 누리꾼들의 신뢰는 가히 절대적이다. 미네르바의 게시물을 따로 모아 놓은 팬 카페가 생기는 것은 물론 아예 인쇄해서 따로 돌려볼 정도다. 그를 '온라인 대통령' '미네르바 교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음 아고라 토론 게시물 1,2위는 미네르바의 게시물이 나란히 차지할 정도고 200건에 달하는 그의 글은 평균 1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을 오간다. 하지만 투자 전문가들조차 그의 정보력과 판단력에 대해 "반박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논리는 압도적이다.

실제 그는 통계자료는 물론이고 시장의 은밀한 정보를 주장의 뒷받침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 쪽 자료 분석은 실제 외환 딜러보다 더욱 정밀하다는 게 정설이다.

'미네르바 열풍'이 계속되자 침묵하던 경제 미디어들도 하나둘씩 그의 주장을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네르바가 10월26일 "코스피의 바닥은 500선"이라고 한 발언은 지금도 주식 시장의 가장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다.

●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 진짜 고구마 파는 노인네라니깐. 그리고 지금 장사하는 나와바리가 동네에 소문나서 이젠 반 카운셀러 받으러 오는 여편네들이라서 고구마 팔면서 재무상담 겸업하느라 장사하기가 힘들어."(2008년 10월 25일)

미네르바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 확실히 밝히지 않고 있다. 정체가 탄로가 나면 더 이상 이 같은 글들을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다음 아고라 방을 찾는 누리꾼들 스스로가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말자면서 그저 계속 경제 논평을 내줄 것만을 원하는 기묘한 상황이다. 때문에 게시판 추천 기능을 서로 자제하자고 권하는 희한한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그저 그의 글을 읽고 조용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 측도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몇 번 취재 요청이 왔지만 미네르바의 요청으로 절대 정체를 발설할 수 없다고 답한 것.

하지만 몇 가지 근거로 그의 정체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미네르바 스스로 '고구마를 파는 노인'이라고 밝힌 것이 그 첫 번째다. 고구마란 노란 황금색으로 인해 '외환 시장'을 일컫는 속어로 통용된다.

또한 그는 수차례 "한국 경제에서 중요성은 '외환>채권>주식'"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게다가 그의 통계자료는 대개 일본 외환 시장을 통해 나온 자료들이 태반이다.

때문에 그의 글을 읽어본 업계 전문가들은 "일본 엔화를 거래하는 환 딜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경제논평에서 엿보이는 '내공'에 근거할 때 경제 쪽에 꽤 지식이 있거나 금융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가 공개하는 정보는 현직에 있지 않고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민감한 내용이 적지 않다. 이는 일각에서 그를 전직 경제 관료 출신 외환 시장 종사자로 추측하는 근거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이 같은 추측에 대해 "자신은 고구마를 파는 노인일 뿐이다"고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 제2의 IMF가 왔나?

"누가 9월 달에 예전 IMF처럼 팡! 하고 터진대? 9월을 분기점으로 최소 6개월 내로 한국 산업 경제전반이 개 박살이 난다는 거지?? 한국에서 IMF 시즌2가 온다는 상황은 실제로 IMF 국제기구의 관리 시스템에 들어간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에 버금가는 경제쇼크와 자산 버블 붕괴에 따른 외국 얘들의 무차별 공세로 무장해제를 당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그게 IMF 시즌2라고 말하는 거지. 국가는 IMF 체계가 아니지만 사실상 IMF 나 다름없는 시즌1을 능가하는 토네이도의 양상…" (2008년 7월23일)

미네르바의 위기 경고는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인수에 나서기 시작한 8월 말에 빛을 발했다. '한국판 지옥의 묵시록'이란 글에서 리먼브러더스의 부실화를 정확하게 예견하는 글을 쓴 것.

미네르바의 경고는 9월에 정점을 이뤘다. 9월부터 3개월간 제대로 관리를 못할 경우 나라 경제가 몰락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었다.

불과 2달 전의 상황이지만 9월 위기설이 나돌던 시기, 그는 특히 은행들의 단기외채 문제와 한국판 서브프라임 가능성, 그리고 한국의 펀더멘털 논리를 가볍게 뛰어넘는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주장해 왔다.

특히 그는 탐욕스러운 자본 시장에 무관심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토목 자본살리기에 열중하는 이명박 대통령 등 일명 한국판 '리만브러더스'의 각성을 촉구하는 논지를 견지해왔다. 한국 경제는 3월부터 스태그플레이션 징후가 뚜렷했는데 정부는 그것을 무시하고 성장 정책만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는 즉각 네티즌들의 정부 비판 논리로 활용됐다.

그의 전망은 "너무 비관적이기 때문에 흥미를 돋울 뿐이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맞으면 그만이고 틀리면 경고로 들릴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 그의 예견이 모두 맞았던 것은 아니다. 그도 한때 코스피 1200선이 바닥이라고 주장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개미투자자들에게 냉혹한 시장의 현실을 전달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것. '총성 없는 전쟁'으로 불리는 국제 자본 시장의 속성을 고려하면 그의 경고는 '튼튼한 펀더멘털'이라는 환상 속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일종의 경제 선생의 역할을 해왔다.

●그가 암시한 '노란 토끼(Yellow Rabbit)'란?

이제 '노란 토끼'가 시작된 거야, 그것만 알고 있으면 이게 뭔 말인지는 내년 꽃 피는 봄이 되면 알 거야. 지금은 '노란 토끼'가 시작 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돼! 노란 토끼에 대해서 말하면 난 비자 싸그리 다 긁어 모아서 외국 나가야 해, 나도 장사는 해야지! 그리고 몸 조심 하고!"(2008년 10월 29일)

29일 절필을 선언한 미네르바는 이전에도 몇 번 누리꾼들에게 몇 가지 충고를 남겼다. 무엇보다 "2010년 전까지 주식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것. 두 번째가 바로 "공부하라"는 것이다.(미네르바 추천도서는 아래 박스 기사에)

그는 10월 초 "정부가 금리를 인하하면 농담이 아니라 무조건 이민을 가라"고 권장(?)한 바 있다. 그 때가 되면 중장기 적으로 일본 물가의 1.4배~1.7배로 폭등할 것이라 예견한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미네르바는 "국제유가가 안정되니까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X소리를 믿으면 안 된다"며 "이미 이 나라는 물가가 국제 유가로 핸들링 되는 나라가 아니라"고 강조한 것이다.

실제 10월27일 한국은행은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경기 회복을 위해 기준 금리를 0.75% 인하 한다"고 밝혔다. 미네르바의 예측이 어디까지 맞을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노란 토끼'라는 알듯말듯한 힌트를 남긴 것이 온라인에서 최고 화두로 급부상했다.

혹자는 지난 1997년 IMF 구제금융 당시 해외 헤지펀드들의 작전명이 '여우 사냥'이었음을 상기하며 '노란 토끼'라는 용어를 외국계 자본, 국제통화기금(IMF) 지원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실제 그의 절필 선언은 "노란 토끼(어둠의 공격)가 시작됐기 때문에 파국은 피할 수 없다" 비관적 경고로 들리기도 한다.

● 미네르바 추천도서

1. 더 박스(THE BOX, 마크 레빈슨)

2.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리오 휴버먼)

3.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막스 베버)

4. 리스크(피터 L. 번스타인)

5. 소비의 심리학(로버트 B 세틀 외)

6. 천재들의 실패(로저 로웬스타인)

● 국제금융을 이해하는 미디어 참고자료

1. 일본 드라마 '하게타카'(6부작)

2. NHK다큐 '글로벌마켓'(7부작)

3. 시뮬레이션 게임 '캐피탈리즘 2'.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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