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재주는 두 형님에 비해서는 비천합니다. 큰 형님은 사람이 병들기 전에 미리 알아 병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해주는 신기(神技)가 있고, 둘째 형님은 가벼운 병이 들었을 때 중병으로 가지 않도록 치료하는 비범한 능력을 지녔지만 저는 사람이 중병에 들어서야 그것을 알고 고쳐 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병이 생기지 않도록 해 주고 중병이 오기 전에 낫게 해 주는 두 형님의 재주는 알지 못하고 그저 중병이 생긴 다음에 치료해 주는 저의 재주를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붕괴됐던 지난 1년간 화타의 두 형님 같은 재주를 지닌 정책당국은 동서를 막론하고 없었다. 사실 정책당국이 설사 사전에 위기를 감지했더라도 선제적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았다.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위기를 주장하면서 과감한 정책을 펴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위기의 진행 정도를 보면서 적절한 대응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가 급박하게 확산됐던 지난 2개월 동안 정부의 대응에 만족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한국은행이 위기의 진원지(?)라는 비난을 받는 상황까지 몰린 것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정부는 지금 우리 상황이 외환위기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기업의 부채 비율이나 외환보유액을 감안하면 그때와는 천양지차로 우리 경제가 튼튼하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히 다른 것이 있다. 가계의 주택담보대출이나 펀드 가입 금액이 천양지차인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본격적으로 떨어지고 있고 펀드가 거의 거덜 난 지금 가계의 소비 여력이 고갈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우리 경제를 지탱해 주던 수출이 세계적 불경기로 고전하고 있다. 그야말로 풍전등화요, 비상시국이다.
이럴 때는 한 외국 전문가의 표현대로 시장이 기절할(?) 정도의 과감한 대응조치(overkill)가 필요하다. 벤 버냉키가 주장한 것처럼 헬리콥터로 돈을 살포하면서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내수 진작 정책을 펴야 한다. 일단 경제를 살리고 나서 부작용을 챙겨도 전혀 늦지 않다. 이제 광폭한 시장이 백기를 들 정도의 확실하고도 결정적인 처방을 할 때다. 우리 경제팀은 화타의 두 형님은 아니더라도 화타는 될 수 있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상진 신영투자신탁 부사장
구독
구독
구독 282